소설가 이청준(1939~2008)씨는 자신의 인생과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경험으로 장편소설을 쓰고 그 제목을 ‘축제’로 했다. 그의 2주기인 지난달 31일 그의 고향이자 장지인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에서 고인의 문학과 인품을 기리는 문인, 예술계 인사, 지역 주민 등 200여 명이 북적대며 치른 추모식 역시도 ‘축제’였다. 남해 득량만이 내려다보이는 묘역에서 치러진 이날 행사는 석조 기념물인 ‘이청준문학자리’ 제막식과 새로 발간되는 ‘이청준 전집’(문학과지성사 발행)의 1차분 봉정식을 겸해서 열렸다.
추모식은 각계 인사들의 추모사, 이청준문학자리 제막식, 추모공연 등으로 진행됐다. 행사 주최자인 이청준추모사업회의 김병익 회장은 “고인의 문학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이겨낼 길을 찾게 하고, 더럽혀진 속을 씻어낼 사랑과 화해를 가르친다”고 고인을 기렸다. 고인의 동향 지기인 소설가 한승원씨는 흰 모시옷 차림으로 나와 “고인이 온화한 성품대로 신선이 되어 청학동에서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입어봤다”고 말했다. 윤상복 장흥부군수는 “문학관 건립을 비롯, 올 상반기에 세운 이청준 문학 선양사업의 기본 계획을 토대로 추모 사업을 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황지우 시인은 추모시 ‘거룩한 염치’를 낭독했다. ‘한국 근현대문학은 이청준을 만나 비로소/ 정신의 실핏줄을 얻었다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살았던 모든 것이/ 들키고야 마는 커다란 물음표를 남겨 놓으셨어요’
부부 조각가 박정환-신옥주씨가 만든 이청준문학자리는 가로 세로 7m 길이의 바닥석, 그 위에 올린 14톤 무게의 너럭바위인 ‘미백(未白ㆍ고인의 호)바위’와 높이 2m의 사각기둥 비석인 ‘글기둥’으로 구성됐다. 김병익 회장은 “지난 4월부터 두 달 간 문학자리 조성을 위한 비용을 모금했는데 목표액 1억원을 훨씬 넘는 2억 1,000만원이 걷혔다”며 “남은 돈은 시설 관리, 전집 발간 지원 등에 쓸 것”이라고 말했다.
바닥석엔 생전 고인이 작품 창작 배경을 표시하기 위해 그렸던 ‘장흥문학지도’가, 글기둥엔 고인과 깊이 교유한 김선두 화백이 그린 얼굴 소묘, 유작 산문 ‘해변 아리랑’의 한 구절, 약력 등이 새겨졌다. 미백바위엔 고인이 쓰던 인장의 글꼴 그대로 그의 호가 새겨졌는데, 이 인장은 고인이 80년대 중반 한양대 교수로 재직할 때 사제의 연을 맺었던 한문학자 정민 한양대 교수가 직접 글자를 쓰고 새겨 스승의 회갑년에 선물한 것이다.
이청준 전집은 미발표ㆍ미완성 작품을 포함, 고인이 남긴 소설 전부를 연대순으로 묶어 향후 5년 동안 총 34권으로 발간된다. 전집엔 작품 개작 과정, 작품 간 상호 관계 등 이청준 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해설도 실린다. 이청준추모사업회는 이날 고인의 초기 중단편을 묶은 전집 제1권 <병신과 머저리> 와 제2권 <매잡이> 를 유족에게 전달했다. 매잡이> 병신과>
이날 행사엔 소설가 최일남 송기숙 김승옥 윤후명 윤흥길 이승우, 시인 박이문 황동규 정현종 김광규 김형영 문정희 감태준 이대흠 나희덕 신현림, 문학평론가 김치수 김주연 김화영 오생근 장경렬 홍정선 권오룡 정과리 이광호 이수형씨 등 문인들과 영화감독 임권택 이창동씨, 김선두 화백, 정민 교수, 김수영 문학과지성사 대표 등이 참석했다.
장흥=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