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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세종시 총리’가 아니었는데

입력
2010.07.3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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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개나, 한마디 하면서 ‘10개월 재상’이니 ‘과포(과대포장) 총리’니 하며 웃어 넘기고 있다. 지난해 9월 초 정운찬 국무총리가 내정되고 임명되던 당시의 기대와 평가를 되돌아 보았다. 그리고 다시 내년이나 내후년 무슨 핑계를 대며 그 어떤 새로운 총리를 또 도마에 올려놓고 있을 것인가.

정 총리가 내정되었을 당시 여론과 민심은 그가 학자와 지도자로서 명망을 쌓아왔음에 공감하고 비정치적 인사라는 대목에 후한 점수를 매겼다. 일부에선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서 민주당의 러브 콜을 받았던 그가 ‘배신을 때렸다’면서 질투에 가까운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용산 참사와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져 있는 상황에서 그라면 사회적 갈등을 무마하고 경제적 애로를 추스를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창 힘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도 ‘실세 총리’라는 표현이 오르내릴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돌연 ‘세종시 총리’로 불리더니 ‘세종시 총리’로 끝날 상황이 됐다. 총리 지명이 발표된 날 서울대에서 평소처럼 강의를 하고 나오던 그는 기자들에게 붙들렸고 졸지에 강의실 앞에 서서 기자회견을 하는 상황에 처했다. 질문 내용은 당시의 관심을 반영해 실세 총리, 4대강 사업,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야권 대통령 후보의 순서로 이어졌다.

세 번째로 나온 세종시 질문에 대한 정 총리의 대답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아 아주 효율적인 플랜은 아니라고 본다. 이미 계획이 발표됐고 사업도 많이 시작됐으므로 원점으로 돌리기는 어렵지만 원안대로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보인다. 충청도 분들이 섭섭하지 않도록 추진해야 한다. 원안보다 수정안으로 가지 않을까 본다.” 그가 ‘세종시 총리’로 몰리게 된 동기였다.

기자들에게 붙들리기 직전 ‘정 교수’는 결과적으로 마지막 수업을 했는데, 그때 학생들과 나눈 대화 속엔 나름의 총리론이 고스란히 배여 있다. 내정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양극화를 해소하여 서민을 돕겠다. 경쟁을 중시하되 뒤처진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정치를 않겠다는 소신은 변함이 없고, 총리의 역할은 정치가 아니라 행정이다. 대통령과 견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 알력이 불거져선 안 되므로 내부에서 조정하겠다.”

정 총리는 이후 용산 참사와 비정규직 문제 등에서 나름의 총리론을 충분히 견지하고 고집해 나갔지만 ‘세종시 논란의 덫’에선 한 발짝도 헤어나지 못했다. 야권의 배신자로서 ‘사랑보다 더한 증오’에 제대로 대응할 정치력이 없었다. 장학퀴즈 같은 청문회에서 서울대 총장답지 않은 무지를 드러냈고, 소소한 대민 접촉과 인터뷰에서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품격을 연출하지 못했다. 그러한 ‘무지와 품격’이 세종시 원안과 수정의 판단 잣대로 오버랩되었다.

정 총리는 세종시 해법을 향한 선봉장이나 방파제 역할을 하라고 임명되지 않았다. 평소 세종시 문제에 대해 심각한 관심도 없었다. 그러한 정치적 이슈를 돌파하는 기술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여당은 물론 야당도 알고 있었고, 임명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더 잘 알았을 터이다.

모든 국민이 정말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지난해 가을은 그의 소신이고 강의의 주 내용이었던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애로 해소가 가장 필요한 시기가 아니었던가. 아울러 평생 자신이 부대꼈던 교육의 문제야말로 최대의 장기가 아니었을까.

정 총리가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애로, 교육제도의 난맥에 대한 해법을 찾아내는 자신의 전공분야를 전혀 살리지 못한 채 물러나는 것이 몹시 아쉽다. 더구나 본인의 열의와 성의와 동떨어진 정치적 문제에 뒤엉켜 그 책임을 지는 모양이 된 현실이 안타깝다.

곧 새로운 총리가 임명될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관심을 모아야 한다. 총리를 갈아치웠다고 대통령과 여권에 상처를 입힌 것일까.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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