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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풍류 무욕 달관… 옛글서 인생의 맛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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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풍류 무욕 달관… 옛글서 인생의 맛을 찾다

입력
2010.07.3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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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묵 지음

김영사 발행ㆍ356쪽ㆍ1만3,000원

“세상 사람들은 바람이 바람이고 달이 달인 줄만 알지 내가 간직한 바람과 달이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밖에 있는 바람과 달은 흐려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하지만, 나에게 있는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따로 없고 밤낮을 가릴 것 없이 산뜻하지 않은 때가 없고 화창하지 않은 날이 없다.”

조선 중기 문인 이경석(1595~1671)은 한강에 있었던 섬 저자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한 글에서 이런 문장을 통해 인욕이 사라진 군자의 깨끗한 마음을 강조했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에 이경석의 글을 소개하면서 숱한 문인들이 예찬했던 저자도가 1970년대 강남 개발로 사라져버렸음을 안타까워한다.

이 책은 이 교수가 한국고전번역원의 이메일 서비스 ‘고전의 향기’를 통해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조선 명문장가들의 글 53편을 가려 뽑아 우리말로 풀이하고, 다시 설명을 붙여 이해를 도왔다. 매끄러운 번역, 간략하지만 깊이 있는 해설 덕에 수백 년 전 선비들의 글 속에 담긴 지혜가 마음 가까이 다가온다.

이 교수는 마음 공부를 중시한 조선 선비들의 옛 글을 ‘빛 바랜 사진첩’이라고 표현한다. 우리 몸 속에 유전되어 온 조선 선비의 삶과 풍경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또 그를 통해 세상을 호령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정조 때의 문인 유언호(1730~1796)는 시골 마을의 객점에서 한 아낙이 아이의 머리를 긁으며 이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행복은 달관에서 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영보(1759~1816)는 큰 대륙도 결국은 바다 위에 떠있는 하나의 섬이라며 상대주의적 시각을 강조한다. 임숙영(1576~1623)은 벼슬에서 쫓겨나 게딱지만한 좁은 집에 살게 된 벗에게 “아무리 큰 집이라도 만족을 모르면 서울 땅을 다 차지하고서도 부족하다 할 것이며, 초가삼간이라도 마음 편히 살 수 있으면 고대광실보다 넓다”고 위로한다.

유언호가 달관에 대한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말년까지 유배와 벼슬길 복귀를 반복하며 실제로는 달관의 삶을 살지 못했다든가, 임숙영의 글이 광해군 말엽 왕과 권신들이 다투어 고대광실을 짓느라 토목공사를 벌인 일을 은근히 풍자한 것이라는 등 명문장 뒤에 따라붙은 이 교수의 해설은 읽는 맛을 더한다.

장맛비가 그친 무더운 여름날, 인왕산 계곡에 찾아간 박윤묵(1771~1849)의 글은 읽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산을 찢을 듯 골짜기를 뒤집을 듯, 벼랑을 치고 바위를 굴리면서 흐르니 마치 만 마리 말들이 다투어 뛰어오르는 듯하고 우레가 폭발하는 듯 하다. 때때로 날리는 포말이 옷을 적시면 서늘한 기운이 뼛속까지 들어와 혼이 맑아지고 정신이 시원해지며 마음이 편안하고 뜻이 통쾌해진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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