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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자기 홀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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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자기 홀릭’ 시대

입력
2010.07.3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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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래된 친구 한 명은 사뭇 기괴하고 독특한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기로 유명하다. 그 중 가장 악독한 것이 바로 개량한복에 대한 선입관이다. 친구는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거의 다 변태쯤으로 여기는데, 그건 아마도 개인적 체험 때문인 것 같았다.

그가 만나본 개량한복을 유니폼 삼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겉으론 온순하고 예의 바르고 섬세하지만, 집에 찾아가서 몰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열어보면 온갖 종류의 야동이 그득하다는 것, 술집에서는 여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더듬더듬 프리허그를 한다는 것, 개량한복은 그렇게 남자의 수성(獸性)을 감추는 데 유리한 옷이라는 것.

나르시시즘에 기반한 소통

뭐, 워낙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인지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그저 웃고 넘어갔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 안에 우리 사회의 숨겨진 진실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아 갈수록 뒤끝이 씁쓸해졌다.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회, 그것을 조장하는 사회에 우리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태초 이래 인류의 문명이란, 타인과의 소통을 전제로 발전해온 게 사실이다. 문자가 그렇고,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돕기 위해 마련된 도구들이다. 그런 도구들은 꽤 많은 성과를 거둬, 현재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문화의 발판이 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즈음 우리 주변의 도구들은 우리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결과를 빚어내는, 그러면서도 그것을 소통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모양새이다.

인터넷의 트위터나 페이스북, 싸이월드 같은 사이트는 명백히 타인과의 소통 혹은 교류를 내세우고 있으나, 그것들이 널리 퍼져 나간 근간에는 철저한 나르시시즘적 메커니즘이 존재하고 있다. 셀카를 찍고, 자신의 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하고, 자신의 취향을 은밀히 드러나게 해주는 것, 사이트 운영자들은 우리 사회의 소통이 바로 나르시시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영민하게 캐치하고, 그것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다.

스마트폰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바로 우리의 ‘현실’이 되어 버렸다. 나르시시즘을 넘어 이제는 거의 ‘자기 홀릭(Self-holic)’에 빠져버린 상태, 그것을 기반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상황, 그것이 우리의 현 주소이다.

문제는 이런 ‘자기 홀릭’들이 야기하는 여러 부작용들이다. 세계를, 타인을, 자기애에 사로잡힌 시선으로 바라보면 돌아오는 것은 오직 판타지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와, 파국뿐이다. 요 근래 일어나고 있는 아동 성추행 사건들이나, 국회의원들의 성희롱 발언의 이면에는 바로 이런 ‘자기 홀릭’성 태도가 깃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자기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진실이고, 자기 자신이 행하는 행위만이 우선인 행동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좀 더 변태적인 모습으로 만연하고 있다.

도구로 문제 해결하려는 태도

얼마 전, 여성가족부에서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성범죄자 알림’ 사이트를 개설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접속해 다운되기도 했다는데, 그래서 또 한편으론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것이 과연 소통이 될지, ‘자기 홀릭’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도구들은 언제나 우리의 뜻과 어긋나게 항상 미끄러지는 성향을 지녔다. 그래서 도구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태도는 최선이 될 수 없다. 좀 더 꼼꼼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는 항목이다.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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