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카드 빚도 갚고 하숙비도 마련해야겠다 싶어서……."
마사지 업소에 침입해 강도행각을 벌이다 27일 붙잡혀 경찰서 형사계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고시생 이모(32)씨는 반쯤 넋을 잃은 상태였다. 상의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이씨는 이날 새벽 3시께 서울 관악구 대학동(옛 신림9동) 자신의 하숙집에서 흉기를 들고 나와 평소 눈여겨 봤던 봉천동의 한 스포츠 마사지업소로 향했다. 평일 새벽이라 업소는 한적했다. 여자 주인 A(48)씨가 카운터를 지키는 동안 남자 손님 B(31)씨가 여 종업원 C(32)씨에게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업소에 들어선 이씨가 흉기를 보이며 돈을 요구하자, 주인은 "칼이다"고 외치며 비명을 질렀다. 당황한 이씨는 주인의 복부와 팔에 흉기로 휘둘렀고 비명을 듣고 달려 나온 여 종업원의 복부도 수 차례 찔렀다. 뒤따라 나온 손님 B씨의 팔에도 깊은 상처를 냈다.
손님 B씨와 격투를 벌이던 이씨는 주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장에서 붙잡혔다. 여자 종업원은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중태다. 업소 주인과 손님도 중상을 입고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장래가 촉망되던 학생이었다.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 사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만 25세가 되던 2003년 군에서 제대한 이후 대학동 일대에서 행정고시를 착실하게 준비해 왔다. 하지만 수년을 매달려 도전한 시험에서 모두 낙방했다. 나이가 차면서는 지방에 있는 부모에게 돈을 받는 일도 면구스러웠다.
이래저래 생활비를 카드로 충당해 빚도 300만원이나 졌고, 최근엔 여러 달 하숙비도 내지 못했다.
절박한 상황에서 떠올린 것이 고시촌 일대에 성행중인 스포츠마사지 업소. 이씨는 경찰에서 "거의 고시를 포기한 상태에서 빚이라도 갚으려는데 오가다 본 마사지 업소들은 지키는 사람도 별로 없고 현금이 많이 있을 것 같았다"며 "흉기는 단지 위협용으로 가져간 것이었는데…"라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경찰관계자는 "수년간 한 시험에 매달린 학생들이 융통성을 잃고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며 "이씨가 '이젠 공부에 질렸다'고 푸념한 것을 보면 막다른 길에 섰다는 심정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29일 특수 강도와 강도 상해 혐의로 이씨를 구속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