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정운찬 총리의 사퇴는 총리실 측근들도 발표 5시간 전까지 모를 만큼 전격적이었다. 정 총리는 ‘명예로운 퇴진’을 위해 사퇴 시점을 이날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는 6ㆍ2 지방선거 패배 다음날,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본회의 부결 다음날, 북중미 순방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의 귀국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사의를 밝혔다. 그 중 한 번은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사의를 표명한 정 총리는 새 총리가 지명되는 순간 총리직에서 물러난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하지만 새 총리 지명이 지연되면서 한때 유임론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여권 내부에서조차 “인적 쇄신의 상징은 총리 교체”라는 사퇴 압박이 계속됐다. 학자 출신인 정 총리는 “자리에 연연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고 수 차례 토로했다. 정 총리는 사퇴 결심을 굳히고 최근 지인들에게“내가 대통령에게 직언도 제대로 못하고 물러난다는 비판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대통령에게 수 차례 (각계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따라서 정 총리는 여당의 재보선 승리로 유임론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그만두는 게 이 대통령의 부담을 줄이고 자신도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두 달 가까이 개각이 지연돼 부처의 업무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지적을 해온 정 총리로선 자신의 사퇴로 인사 물꼬를 터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는 이날 오전 임태희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사임 기자회견을 갖겠다는 의사를 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정 총리는 이에 앞서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전후에 이 대통령과 만나 자신의 거취 문제를 상의했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물론 취임 10개월 만에 정 총리가 퇴진 수순을 밟게 된 직접적 계기는 세종시 수정안 부결이다. 세종시 수정안 추진 과정에서 빚어진 친박계와의 갈등이 거취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정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제가 생각했던 일들을 이루어내기에 10개월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은 너무 험난했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당분간 공식 일정에는 참석하되, 후임 총리 지명 이후에는 청사 집무실에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정 총리의 사의 표명과 관련, “좀 더 같이 일하고 싶어 여러
번 만류했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사의를 표명했으며 저는 이를 매우 안타깝게 여긴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 총리는 곧은 학자답게 어떤 정치적 고려나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 오로지 국가 미래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헌신해 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인간적으로도 매우 진실되고 성실하며 경제와 교육 분야는 물론 사회의 그늘진 곳에 관심이 많아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많은 기여를 해주신 것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