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살던 조모(38)씨는 올 3월 전남 순천으로 이사하려 했으나 300만원이 모자라 곤란에 빠졌다. 법무사 사무소에 취업해 일정 수입이 있었지만 개인파산을 겪은 면책자여서 등록 대부업체도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불법 고리사채에 의존하려는 순간, 인터넷 카페 ‘면책자 클럽’을 통해 ‘팝펀딩’(popfunding.com)이라는 대안금융 사이트를 알게 됐고 ‘연 23%ㆍ15개월 분할상환’이라는 좋은 조건으로 빌릴 수 있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사이트 회원 30여명이었는데, 형편에 맞게 1만원부터 9만9,000원까지 내놓은 이들 대부분은 조씨와 같은 개인파산 후 면책자였다.
28일 금융계에 따르면 제도권은 물론이고 정부의 저신용자 지원에서도 배제된 금융 소외자들이 대안 금융사이트를 통해 상부상조하고 있다. 2007년 5월 문을 열 때만 해도 ‘곧 망할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으나, 3년간 13억원 넘게 대출이 이뤄졌는데도 지난달 말 현재 완전히 부도 난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최대 3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한 대안 금융사이트는 ‘십시일반(十匙一飯)’방식으로 운영된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스스로의 처지와 상환계획을 올리면, 회원들이 읽어본 뒤 각자 판단에 따라 최대 9만9,000원까지 빌려준다. 금리는 대출 희망자가 상한을 제시하면 회원들은 한도 내에서 각자의 대출 금리를 지정한다.
전문가들은 성공 코드를 ‘집단지성’에서 찾는다. 3년간 800여명이 넘는 ‘저 신용자’(6~10등급)에게 비교적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줬는데도 5%대의 대손율을 기록한 것은 최소 수 십명에 달하는 다수의 사람이 동시에 심사하는 구조여서 상환 가능성이 높은 희망자가 자연스레 선택된다는 것.
이 사이트는 올해 2월부터 기존보다 진전된 서비스도 시작했다. 면책자 클럽 우수회원 2,000명끼리 별도로 공제회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 서로에게 빌리고 빌려주는 ‘그룹 서비스’를 선보였다. 동질적 집단으로 구성된 만큼 대출 금리도 상대적으로 낮고, 대출한도도 일반 팝펀딩보다 3배 이상 많은 1,000만원이다.
대안 금융의 성공은 개점 휴업 상태인 미소금융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도 제공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보유재산이나 수입, 신용등급을 토대로 기계적으로 심사하는 대신 비슷한 처지의 심사위원 다수가 개별 사정을 일일이 감안해 결정하면 자활의지가 높은 사람에 대한 대출이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도 “대안금융 등 개인간 거래를 통한 소액대출이 성공적으로 상환되는 점에 정부와 금융관계자들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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