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랙’을 보기 전 알아둬야 할 사항. 감독 조던 스콧은 당대 최고 비주얼리스트 감독 중 하나인 리들리 스콧(‘글래디에이터’ ‘블랙호크다운’)의 딸이자 형 못지 않은 영상의 연금술사인 토니 스콧(‘탑건’ ‘데자뷰’)의 조카다. 선입견을 만들 수도 있지만 이 영화를 이해하는 주요 정보다. 사람을 꼬이는 화술은 어떨지 몰라도 영상의 세공술은 믿어도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조던은 아버지처럼 광고계에서 뚜렷한 이력을 쌓은 뒤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영화는 1930년대 한 폐쇄적인 여학교 기숙사를 캔버스로 삼는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소녀들은 다이빙 교사 미스G(에바 그린)를 통해 해방감을 느낀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는 미스G는 아이들에게 미래의 자유를 역설하고, 소녀들은 반장 다이(주노 템플)를 정점으로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그러나 매혹적인 외모의 귀족 출신 피아마(마리아 발베르드)가 전학 오면서 그들의 세계에 조금씩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미스G와 소녀들은 선망과 질투와 시기와 애정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피아마를 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미스G의 실체도 점점 드러난다. 피아마의 등장이 불러온 작은 파문은 결국 감정의 파국으로 이어진다.
소녀들의 심리를 조밀하게 들여다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믿음직하지만 드라마의 굴곡은 없어 심심하다. 강으로 다이빙하는 소녀들의 역동적인 동작, 기숙사 내부 풍경을 정통회화처럼 잡아낸 화면 등이 이 영화의 미덕. 강박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미스터리한 여인 미스G를 연기한 에바 그린의 연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2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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