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처럼 종이신문이 아니라 주로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뉴스를 접하다 보면, 가장 먼저 끌리는 건 역시 제목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어디일까’ 라는 기사 제목을 보고 클릭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나라를 알게 된다고 해서 거기 가서 살게 될 리도 없고, 그 나라 사람이 될 수도 없겠지만 대체 그 나라는 왜 행복한가 알고 싶은 거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한가를 알고 싶은 거겠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중요
갤럽이 설문을 실시한 결과 덴마크가 가장 행복한 나라로 조사되었단다. 한국은 155개국 중에 56위라니, 중위권쯤 되겠다. 조사팀은 이들 나라 국민의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와 조사 전 하루 동안의 행복도를 물어 그들의 행복 정도를 수치화했단다. 그런데 도대체 그들의 행복 정도는 어떻게 수치화된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매우 만족, 만족, 보통, 불만, 매우 불만…, 뭐 그런 항목의 질문이었을까. 그리고 내가 만일 조사대상이었다면 나는 어떤 항목에 표시를 했을까. 설마, '매우 끔찍' 이라는 항목이 있지도 않았을 테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표시를 하지는 않았을 테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런 조사에 가장 만만한 응답은 '보통'이다.
그런데 대체 행복이란 건 뭔가. 그것이 수치화될 수 있을 정도로 절대적인 감정인 것인가? 나란 사람은, 어떻게 말한다고 해도 대단히 소심해서, 남의 시선 같은 건 상관없다고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편이다. 남들의 시선 속에서 안전하게 느껴질 때, 나는 비교적 행복하다. 그러니까 아주 잘 살고 싶기보다는 지나치게 못 살지 않기를 바라고, 최고가 되기 보다는 그저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는 편이다. 내 꿈이 소박해서가 아니라, 더 나쁜 것보다는 덜 나쁜 것이 낫고,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교 당하는 것은 괴롭지만 은근슬쩍 비교해보고 안심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이 정도면, 겨우 이 정도라고 하더라도 괜찮지 않은가… 늘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위로다. 그러니 내가 조사대상이 되었다면, 나는 분명히 나보다 먼저 질문지를 작성한 사람의 답안지를 커닝하고 싶었을 테다. 물론 비교대상을 잘 선택해야 한다는 애로사항이 있기는 하다.
조사를 진행한 연구진들은 GDP가 높은 국가가 행복 순위도 높았다면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분석한 모양이다. 나는 그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경제적 곤란이 얼마나 모질게 삶을 괴롭히는지 알만큼 아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라는, 교과서적인 말을 여기에서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어느 쪽이나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사회적 네트워크가 단단한 사회의 행복지수가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이 행복지수라는 것을 도무지 못 믿겠다고 하더라도 그 말에는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극단적으로 개인화된 시대에 살면서도 가족은 가장 중요하고, 가족과 같은 친구들은 늘 위로가 된다. 고립되어 있는 개인에게 뭔가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히 고마운 일일 터이다. 두드릴 수 있는 문이 여러 곳이라는 뜻이겠다.
두드리면 열리는 문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는 어디 그런 문이 있나? 두드리면 열어주는 곳이 아니라, 두드리기도 전에 닫아버리는 문들… 제목만 보고도 그냥 삭제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기어코 클릭하게 되는 그런 기사들… 사회가 날 위로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날 불쾌하게 만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대. 갑자기 라는 소설 제목도 떠오른다.
나는 한국이 행복순위 56위라는 그 근거 부족한 말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한국이 상위권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안심한다. 말하자면 덴마크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인 건데, 덴마크 사람이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건 정말 불행한 느낌이 들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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