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청춘스타였던 영화배우 A가 몇 해 전 무심코 던진 말. “유해진 형은 얼굴 덕을 많이 보는 배우이죠.” 잘생긴 배우들이 차고 넘치는 충무로에서 개성 있는 용모가 오히려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였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그를 보고 “정말 깡패가 출연한 줄 알았다”는 영화 팬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유해진은 분명 ‘배우’답지 않은 얼굴 덕을 보고 있는 듯하다. 연기력 논란에 종종 휩싸였던, 그러면서도 다양한 역할에 대한 욕심이 많은 A의 유해진에 대한 질시 어린 촌평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충무로에서 잘생긴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배우는 장동건 아닐까. 그는 2000년 ‘친구’이후 출중한 외모를 극도로 망가뜨리는 배역들을 맡아왔다. ‘해안선’에선 돌발적 사고로 미쳐버린 군인을 연기하더니 ‘태풍’에선 흉터투성이 얼굴의 탈북자로 변신했다. 한중일 합작영화 ‘무극’에선 주인을 등에 업고 ‘네 발’로 달리는 노예 연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꽃미남 배우 B가 “너무 바보 같이 보여서 출연 제의를 거부했다”는 배역이었다. 자신의 연기를 외모에 가두고 싶지 않은 장동건의 노력은 갈채 받아 마땅하지만 자해 수준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지난해 그가 젊은 대통령 역을 맡았던 ‘굿모닝 프레지던트’ 촬영 현장에서 장진 감독이 던진 농담 한마디. “내 덕분에 거의 10년 만에 정장 입은 걸 고맙게 여겨라.”
배용준은 의도치 않게 외모에 갇혀버린 경우다. ‘스캔들’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던 그는 한류스타로 급부상하면서 연기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친 듯 하다. “너무 진한 애정묘사가 나올까 봐 가슴 졸이면 봤다.” 2005년 ‘외출’ 시사가 끝난 뒤 일본 여자 저널리스트가 남긴 말은 한류스타라는 멍에를 대변한다.
지난주 개봉, 140만명(26일 기준)을 불러모으며 흥행 불씨를 지피고 있는 ‘인셉션’은 ‘배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입지를 더욱 다진다.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 등으로 지난 세기말 지구촌 여인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이 꽃미남 배우는 2000년대 들어 ‘꽃’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다.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듯한 퉁퉁하고 까칠한 그의 잡초 같은 얼굴엔 너무 잘난 용모 때문에 연기가 묻히는 현실에 대한 반감이 서린 듯 하다. 마흔은 넘어 보이는(그는 36세다), 주름 파인 그의 얼굴은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되어 ‘인셉션’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미남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한 배우를 더 많이 보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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