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일단 한숨을 돌렸다. 유럽은행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결과가 지난 주말 발표되면서, 유럽경제는 일단 스트레스 테스트에 대한 '스트레스'에선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소문처럼, 스트레스 테스트 자체가 너무 '봐 주기식'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헝가리 등 동유럽에서도 불길한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어 유럽경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한 상황이다.
테스트 결과
스트레스 테스트란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은행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려내는 일종의 건전성 심사.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미국도 은행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공적자금 투입대상을 결정했다.
유럽의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는 유럽은행감독위원회(CEBS)가 유럽연합(EU) 20개 회원국의 91개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EU 경제성장률이 내년에 0.4% 하락하고 실업률이 현 9.6%에서 11%로 상승한다는 최악의 전제조건을 가정한 다음, 건전성 척도인 기본자기자본(Tier 1) 비율 6%를 유지할 수 있는 은행과 그렇지 않은 은행을 가려내는 방식이었다.
지난 주말 발표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독일의 하이포 리얼 에스테이트 ▦그리스의 ATE ▦그리고 '카하(caja)'라 불리는 스페인의 5개 저축은행 등 중소형 7개 은행만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대부분 시장에서 부실은행으로 소문난 곳들인데다, 일부는 이미 국유화 또는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터라 시장 충격은 전혀 없었다. 유럽 은행의 손실 금액은 5,650억 유로로, 지난해 5월 미국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와 비슷하다.
시장의 반응
유럽은행들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는 유럽 재정위기의 커다란 분수령으로 간주됐다. 만약 초대형은행 혹은 다수의 은행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유럽 재정위기는 금융위기로 전이돼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10%에도 못 미치는 불합격률은 일단 이런 시장의 우려를 씻어냈다. 유로화 가치는 상승했고, 뉴욕증시도 상승 마감했다. 주요 유럽국가들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대부분 내렸다.
문제는 테스트 결과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 대부분 유럽은행들이 테스트를 통과한 것은 결코 건전해서가 아니라, 평가 자체가 너무 느슨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도 "유럽 각국은 이번 테스트가 은행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엄격하고 투명했다고 주장하지만 외부 전문가들은 이런 시각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유럽 각국의 재정악화로 은행이 보유한 국채가치가 하락할 수 있음에도 불구, 만기까지 보유할 것으로 추정되는 국채에 대해서는 시가평가를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잠재부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테스트 자체에 대한 신뢰의문이 고조되자 EU는 상세 평가결과를 내달 6일 추가로 발표하기로 했다.
유럽은 어디로
여러 비판에도 불구, 일단 호의적 테스트 결과가 나옴에 따라 유럽위기는 큰 고비를 넘겼다는 게 다수의 평가다. 미국도 지난 해 금융기관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내놓았을 때 '조건이 엄격하지 않다'는 비판이 지금보다 더 쇄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는 계기가 됐다.
더구나 몇 달 전부터 국제 금융시장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던 유럽의 '7월 위기설'도 점차 수그러지고 있는 상황. 7월 위기설이란 남유럽 각국의 국채만기가 7월에 몰리는데, 신용 위험증가로 차환 발행이 이뤄지지 않아 이들 국가가 디폴트에 빠지고 결국 채권을 보유한 은행들도 집단부실화할 것이란 극단적 시나리오다.
하지만 최근 스페인, 그리스 등 문제의 남유럽 국가들이 잇따라 국채발행에 성공하는 등 7월 위기설은 단지 '설(說)'로 끝나는 분위기인데, 내달 6일 EU가 보다 신빙성 있는 스트레스 테스트 세부결과까지 공개한다면 공포감은 서서히 소멸될 것이란 지적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신뢰성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지만 7월 위기설과 같은 유럽발 재정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어느 정도 진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악재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은행들의 건전성이 입증된 것일 뿐, 각국의 재정난은 여전히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의 국제통화기금(IMF)행 가능성이 심심치 않게 불거지고 있는 상황.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현재 유럽은 은행부문의 위험보다 국가 자체에 대한 위험이 더 커서 지난해 미국과 차이가 있다"면서 "단기적으로 증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겠지만 강력한 모멘텀이 되지는 못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최근 뇌관으로 부상한 헝가리의 경우 2개의 은행이 이번에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고 모두 통과했지만, 국가 신용등급은 곧 강등될 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EU의 스트레스테스트 결과와 관련, "국내 금융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지난달 말 현재 국내 금융회사가 이들 7개 은행으로부터 차입한 돈은 없으며, 다만 독일의 히포 리얼 에스테이트에 대해서만 5,000만달러의 커버드본드 채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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