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리샴 지음·신윤경 옮김/문학수첩 발행·374쪽·1만2,000원
1989년 장편소설 <타임 투 킬> 로 데뷔한 이래 <펠리컨 브리프> <의뢰인> 등 법정(法庭)을 무대로 한 화제작을 잇따라 발표하며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2억3,500만부 이상의 책을 팔아치운 미국 소설가 존 그리샴(55ㆍ사진)이 지난해 발표한 첫 단편소설집이다. 의뢰인> 펠리컨> 타임>
수록작 7편은 모두 그의 데뷔작 <타임 투 킬> 의 무대였던 미시시피주 포드 카운티의 소도시 클랜턴이 배경이다. 상당수는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그 내용은 치열한 법정 공방이 서사의 중심축인 그리샴의 전작들과는 거리가 있다. 타임>
예컨대 '생선 서류'는 오래 묵혀두었던 수임 사건으로 뜻밖의 거액 합의금을 받게 된 변호사의 일탈기다. 특정 전기톱 제품에 중상을 입은 벌목공 4명에게 제작사의 보상금을 받아주겠다며 접근했던 주인공 맥킨리는 4년 뒤에야 50만 달러에 합의하자는 회사 측의 전화를 받는다. 소액 이혼소송이나 맡으며 빚에 허덕이는 무능한 가장 취급을 받던 중년 변호사는 이 돈을 빼돌려 새로운 인생을 도모할 궁리를 하고, 난생 처음 사기 행각을 벌이기 시작한다.
'마이클의 방'에서 변호사 웨이드는 퇴근길에 권총을 든 남자에게 납치당한다. 영문모를 봉변을 당하는 23년 경력 중년 변호사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그동안 고소한 사람들이 누구였지? 유언장에서 이름이 제외된 사람들은 누구였더라? 이혼 소송에서 불리한 판결을 받은 사람인가? 아니면 소송에서 참패한 쪽일까?"(223쪽) 하지만 그가 지은 업보는 짐작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가 남자에게 끌려가 만난 사람은 남자의 아들인 11세의 식물인간 소년 마이클. 태어날 때 의료사고를 당한 아이는 의사가 웨이드의 변호 덕에 승소하면서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비참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사건 설정, 군살없는 문장과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결말부의 맵싸한 여운까지, 세계가 공인한 이야기꾼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소설집이다. 죽기 직전까지도 허세 부리기를 멈추지 않는 사형수와 가족들의 마지막 만남을 그린 '레이몬드 데려오기', 사기꾼 사업가에게 가버린 부인을 찾으려 뛰어난 도박 솜씨로 그의 카지노를 거덜내는 소시민 남자의 이야기 '카지노'도 일독할 만하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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