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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막 화나고 그래…마음 속 괴물, 넌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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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막 화나고 그래…마음 속 괴물, 넌 누구냐?

입력
2010.07.24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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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지음/문학동네 발행·272쪽·1만원

소설가 김영하(42)씨가 단편소설집으로는 (2004) 이후 6년 만에 펴낸 것으로, 미발표작 '로봇' '악어'를 비롯한 13편의 단편이 실렸다. 이 중 5편은 묘한 여운이 남는 네댓 쪽 이하 짧은 분량의 장편(掌篇)이다.

김영하씨의 단편은 날렵하다. 겹겹의 이야기, 상징과 암시 등으로 의미를 깊게 하려는 여느 단편소설과 달리, 그는 속도감 있고 선명한 서사를 구사하면서 여기에 독특한 상상력이나 낙차 큰 반전을 곁들여 개성있는 미학을 보여준다.

수록작 '여행'은 결혼을 앞둔 옛 애인을 상대로 한 남자의 충동적인 납치극이다. '끝낼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계속된' 연인 관계가 흐지부지 끝난 뒤 서로에게 무심하던 두 사람의 감정은 여자가 남자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면서 기묘하게 흔들린다.

남자는 자신의 이별여행 제안을 수락하고도 만남을 차일피일 미루는 여자를 찾아가 차나 한잔하자며 차에 태우고는 느닷없이 고속도로를 올라탄다. 브레이크 없는 남자의 충동과 자제심을 잃어가는 여자의 공포는 서로 얽히며 가파르게 파국으로 치닫다가 뜻밖의 반전을 맞는다. "최근 우리 사회에 불안정성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이 저도 그게 뭔지 모르는 채로 공격적으로 드러내는 마음 속 괴물 같은 것에 관심이 간다"는 작가 김씨의 말과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로봇'의 주인공 남자는 자신이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세운 '로봇 3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로봇이라며 여행사 직원 수경을 유혹한다. 로봇의 의무라는 그 원칙의 제1조는 인간을 해치면 안된다, 제2조는 제1조에 어긋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조는 앞의 두 사항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것.

그 헌신적 자세에 감동한 수경과 잠자리를 갖는 데 성공한 남자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날 종적을 감춘다. 그가 밝힌 작별의 이유는 "열정적 사랑은 인간인 당신(수경)을 해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으로, 로봇 3원칙을 지키려면 자신이 떠나야 한다는 것. 그가 진짜 로봇이라면 애틋하고 만약 로봇인 체하는 인간이라면 교활한, 독자로서는 어떤 결말을 상상해도 흥미로운 사랑 이야기다.

변성기를 맞은 한 소년 가수에게 천상의 목소리를 빼앗긴 인기 가수('악어'), 유부녀와의 밀회를 앞두고 모텔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남자의 영혼('밀회'), 즐겨 먹던 아이스크림에 이상한 맛이 난다며 회사에 보상 신고를 한 뒤 점점 초조해지는 젊은 부부('아이스크림')를 각각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도 저마다 뛰어난 상상력과 심리 묘사로 빛난다. '퀴즈쇼'는 김씨가 2007년 발표한 동명 장편소설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다.

2008년 5월 한국을 떠나 1년 7개월 동안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글을 썼던 김씨는 컬럼비아대 초청으로 오는 9월부터 다시 1년 이상 미국에 체류할 예정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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