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홋카이도 유바리 시. 멜론으로 유명한 곳이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로도 알려져 있다. 그 유바리 시가 한국의 뉴스 초점이 된다. 눈, 멜론, 판타스틱 영화가 아닌 재정파탄이란 무서운 용어를 달고 우리 곁에 왔다. 2007년 유바리 시는 재정파탄을 선언했고 유령 도시로 바뀌었다고 뉴스는 전한다. 상큼한 멜론 향기와 환상적 스크린으로 왔던 그 도시가 이번엔 성남시의 모라토리엄으로 다시 우릴 찾았다.
성남시 이야기에 유바리 시만 동원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유바리 시가 일본에서 뉴스 중심에 있었을 때 한 쌍으로 전해진 일본 지자체 소식이 있었다. 히가시 코쿠바루 히데오(東國原英夫). 홋카이도에서 우울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을 때 그는 희망의 전도사가 되고 있었다. 미야자키 현의 지사에 당선된 그는 원래 소노만마 히가시라는 예명으로 인기있는 코미디언이었다. 불미스런 사건으로 연예계를 떠난 후 대학에 진학해 정치학 공부를 한다. 과오를 씻겠다던 공부에 전념하던 그가 미야자키 현 지사 선거에 출마한다.
그 이전의 3명의 지사는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내리 중도하차했다. 뇌물 수수와 관련된 탓이다. 소노만마 히가시는 어두웠던 과거를 참회한 자신을 미야자키 현에 투영시켰다. 선거 전략은 먹혔다. 당선 후 소노만마 히가시 식 지방 자치 정치를 선보인다. 지사 관사를 관광명소로 개방하고 지사 승용차를 없앴다. 그 고장 농수산물에 자신의 얼굴을 등록상표로 넣도록 허가했다. 회의를 간소화하고 현장을 나가도록 공무원을 독려했다. 그의 이마를 만지면 복이 온다는 소문도 퍼지자 이마 내놓기를 마다않았다. 유바리 시와 대조되면서 소노만마 히가시의 인기는 하늘을 찔러 자민당에서 수상 후보로 거명했을 정도다.
유바리 시가 파탄나기 전, 히가시가 지사에 당선되기 전 지역 언론은 그에 주목하지 않았다. 위기를 예감하지도 진단하지도 못했다. 성공의 방식도 제시하지 못했다. 도시가 재정난에 들자 법석을 떨었고, 지사로 선임되어 인기를 끌자 매일같이 그에 카메라를 갖다 댔을 뿐이다. 성남시의 호루라기 이전까지 그를 의제로 올리지 못한 한국의 지역 언론도 그 같은 비판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순 없다.
성남시 문제를 지자체 문제로만 환원시켜선 교훈을 얻기 어렵다. 지역 정치의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지역 언론, 시민사회를 묶어 언급해야 한다. 지역 언론이 자신의 생존 기반이 무너지는데도 외면하고 있었다면 명백한 직무유기로 질타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유착된 지자체, 지역 언론 간 관계를 감시해야 한다. 그를 통해 시민사회, 지자체, 지역 언론 간 견제적 연대를 이뤄 공동운명체적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곧 성남시의 호루라기가 전하는 의미다.
그런 다짐을 기대하고 있던 차에 ‘진주MBC’ 소식을 접한다. 신임 MBC 사장은 취임하면서 진주MBC를 창원MBC에 통합하라고 지시했다. 경영 합리화가 이유라고 했다. 창원과 진주를 묶을 지역적 동질성을 밝힌 것도 아니어서 지역과 관련된 이유를 읽어내긴 어렵다. 광고 시장, 사업성을 이유로 대곤 있지만 지역방송이 그 동안 지역에 기여하며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일은 불문에 붙이고 있다.
지역을 살피며 통합을 반대하는 측엔 가혹한 언어적, 물리적 벌을 가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반대하고 안주하려는 방송인이라는 오명도 붙인다. 해고, 정직의 벌도 서슴지 않고 내린다. 벌써 3명이 해고, 7명이 정직 통보를 받았다. 개인에 내려진 징계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지역을 무시한 서울의 일방적 폭력에 다름아니다. 호루라기를 불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지역에 귀를 닫은 처사다.
성남시처럼 폭탄 발언을 해야 지방자치는 한번쯤 눈길을 끌 수 있다. 그 이전에는 관심조차 없다. 지역 현안을 살피고 지역 정체성을 찾으려 애쓰던 지역 언론이 서울의 사장 지시에 하루 아침에 사라져도 별 관심이 없다. 효율성이란 편리한 슬로건에 묻혀버리고 만다. 더불어 사는 한국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이 무서운 무관심을 떨쳐야 한다. 아직도 지역방송 지키기로 뜨거운 여름을 나는 ‘진주MBC’에 혹 지나가는 여행길에라도 귀 기울이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