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동 멈춘 탄광도시 위에 문화기적을 일구다
독일 북서부 루르 공업지대의 도시 에센. 그 중심지인 베를리너 광장 바로 옆에 위치한 콜로세움 극장. 빛 바랜 붉은 벽돌이 만들어낸 단단한 외관이 인상적인 이 극장은 1990년대 초반까지 대형 공작기계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극장 로비 천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기중기는 이 공간의 과거를 증언하고 있다. 극장 바로 옆 구름다리 건너 가구공장을 개조한 부속 주차건물엔 가구 브랜드 이케아의 이름이 여전히 선명하다. 콜로세움 극장은 과거를 껴안으며 공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의 변신을 꿈꾸는 에센의 야망을 웅변하고 있다.
문화 거점이 된 탄광
에센 외곽에 있는 세계 최대의 탄광 졸페라인(Zollverein)의 변신은 콜로세움 극장보다 더 극적이다. 150년 가까이 검은 먼지를 흩날렸던 이곳은 유럽 문화지도에 주요 거점으로 표시되고 있다. 졸페라인은 공업지대가 문화의 본거지로 연착륙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세계적인 성공 사례다.
루르 공업지대는 독일의 산업혁명과 '라인강의 기적'의 발원지다. 19세기 중반부터 이곳의 방대한 탄광지대는 독일 산업의 젖줄을 형성했다. 광부들이 끊임없이 퍼 나른 석탄은 코크스로 만들어졌고, 코크스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 제조에 쓰였다.
졸페라인은 루르 공업지대의 노른자위였다. 1851년 본격적인 채탄에 들어가 하루 1만3,000톤 가량의 석탄이 채굴됐다. 졸페라인이 번창하며 에센도 덩달아 덩치를 키워갔다. 졸페라인의 코크스 공장 굴뚝은 지역 경제를 넘어 제조업 강국 독일의 버팀목이었다. 사람들은 부를 불러온 루르 지역의 석탄을 '슈바르체스 골트(Schwarzes Goldㆍ검은 황금)'라고 불렀다.
그러나 20세기가 저물면서 검은 황금도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석탄은 고갈됐고, 육중한 채광시설과 코크스 공장은 흉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1986년 탄광은 폐쇄됐고, 코크스 공장도 1993년 가동을 멈췄다. 지역 경제는 탄광시대의 종언에 고개를 떨궈야만 했다.
굴뚝에 연기가 끊기면서 사람들은 탄광을 대체할 새로운 공장이 들어설 것이라고 기대했다. 광부들은 자신들의 청춘과 폐를 갉아먹은 탄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길 바랐다. 소유주인 RAG도 대개의 예측과 희망대로 고철이나 다름없는 시설물을 철거하려 했다.
그러나 에센이 속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탄광'으로 불리던 졸페라인을 사들여 문화공간으로의 개조를 시도했다. 그 자체가 소중한 지역 유산이라는 생각에 원형을 유지하며 시설을 바꿔나갔다. 2억 유로라는 막대한 금액을 투자했다.
주 정부의 선택은 문화 기적으로 이어졌다. 졸페라인은 2001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846~1946년 근대 건축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설"이라는 것이 지정 이유였다. 졸페라인은 루르 지역이 '2010년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문화의 향기 뿜어내는 굴뚝
졸페라인은 1928년 만들어진 58m 높이의 거대한 수직 갱 '샤프트12'를 중심으로 85개의 건물들이 흩어져 있다. 외관과 골조가 채탄 시절 그대로인 샤프트12는 루르 지역의 역사와 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루르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석탄을 나르던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루르 지역에서 발견된 화석과 갖가지 석탄이 전시되고, 지역인들의 생활 변천사를 엿보게 하는 의류와 사진, 각종 문서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심지어 진폐증에 걸려 숨진 한 광부의 폐까지 포르말린에 담아 보관하고 있다. 이곳의 안내를 맡고 있는 브리타 블라이씨는 "탄광시설은 루르 지역의 역사나 다름없다. 이곳을 최대한 보존하며 루르 지역에 대한 박물관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수십년 동안 열기를 내뿜던 보일러하우스는 영국의 유명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손길을 거쳐 '레드닷 디자인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식기와 욕실 도구부터 자동차까지 각종 제품들을 전시한 이 박물관은 한해 12만명이 방문하는 디자인의 성지가 됐다.
석탄을 보관하던 거대한 저장고 등 여러 건물들은 수시로 공연 무대가 되고, 미술 전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최근 이곳에서 지난해 숨진 독일 출신의 전설적인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에 대한 영화를 촬영했다. 관광객들은 거대한 공장 굴뚝 사이를 조깅하고 산책하며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지난해 이곳을 찾아 지갑을 연 관광객만 100만명이었다.
에센 도심에 위치한 유명 예술학교 포크방대학은 아예 캠퍼스를 졸페라인으로 옮기고 있다. 디자인학과와 무용학과에 이어 사진학과, 건축학과 등이 내년 이주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세지마 가츠오, 니시자와 류에의 설계로 폐광 위에 새로 지은 새하얀 건물이 미래 예술가의 새로운 둥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포크방대학의 쿠르트 메네르트 부총장은 "세계문화유산에 대학 캠퍼스가 위치한다는 것만으로도 창조적 활동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인터뷰/ 롤프 쿨만 졸페라인 커뮤니케이션부장
롤프 쿨만 졸페라인 커뮤니케이션부장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잔뜩 묻어났다. 그는 기자를 안내하는 동안에도 지나가던 관광객이 질문을 던지면 자세한 설명으로 응대했다.
그는 "졸페라인은 에센의 자부심이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상징"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예전에 막 캐낸 석탄을 기계로 1차 가공했던 농구장 크기만한 콘크리트 방에서 이뤄졌다. 진회색 벽을 비추는 노랗고 하얀 전등이 미니멀한 예술 작품처럼 다가왔다. 문화를 캐내는 폐광 졸페라인의 현주소처럼 느껴졌다.
그는 "현재의 졸페라인이 있기까지 무수한 난관을 넘어서야만 했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의 반발과 막대한 재정 마련이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졸페라인의 현재에 대해 거의 모든 주민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뒤 모두들 자랑스러워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졸페라인이 파리의 에펠탑이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졸페라인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법 질문을 던지자 그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에센의 인근 도시 보훔의 사례를 떠올리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980년대 보훔은 탄광을 대신해 전자회사 그룬디히와 자동차회사 오펠의 공장을 유치했으나 20여년 후 두 공장이 문을 닫으며 경제적인 한파를 겪어야만 했다. "졸페라인의 건물들을 없애고 또 다른 공장을 세웠으면 더 큰 문제에 봉착했겠죠. 이렇게 기존 공간을 문화적으로 소화하는 것이 훨씬 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기존 굴뚝시설의 문화시설로의 변모를 통해 에센이 지속가능한 도시의 발전 방향을 찾았다는 것이다.
졸페라인이 벌어들이는 관광수입만 해도 1년에 5,000만~6,000만 유로. 세수 효과는
1년에 300만 유로 정도다. 쿨만 부장은 "옛날 채탄이 한창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아주 적은 수입이지만 보이지 않는 경제적 효과는 훨씬 더 크다"고 평가했다.
"전통적으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상징은 쾰른 대성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상징이 졸페라인으로 바뀌었습니다. 최근 주 지방선거 포스터에는 졸페라인의 대표적 건축물인 '샤프트12'가 새겨졌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너무나 감동적인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에센이 자리잡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서구에서도 낯설게 느껴질 만한 지명이다. 독일의 대표 도시인 베를린이나 뮌헨과 비교하면 그 인지도는 한참 떨어진다. 그러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독일 미디어산업의 집결지다. 유럽 최대의 상업방송인 RTL과 독일 최대의 공공 방송인 WDR, 도이체 텔레콤, 소니픽쳐스 독일지사 등 6만3,000여 개의 미디어 관련 회사들이 둥지를 트고 있다. 독일의 미디어 수도라 불릴 만 하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대부분의 도시는 석탄산업을 바탕으로 한 중공업에 생계를 의지했다. 그러나 1980년대 석탄의 시대가 막을 내리며 이곳은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독일 주미디어청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방송담당 관리관인 노르베르트 슈나이더씨는 "탄광이 폐쇄되고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했고, 그들은 미디어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졸페라인의 문화시설로의 전환도 주정부의 무공해 산업 유치와 무관치 않다.
이곳의 미디어 산업이 일궈낸 성과는 눈부시다. 2007년 기준 미디어 산업의 총수익은 177억 유로에 달한다. 베를린(17억 유로)과 뮌헨(87억 유로)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미디어 콘텐츠 생산량도 다른 지역이 넘보지 못할 정도다. 독일 TV프로그램의 3분의 1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룩셈부르크를 근거지로 삼았던 RTL은 1988년 쾰른으로 회사를 옮겨온 뒤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영화 로케이션 유치도 빼놓을 수 없는 주력 산업이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1991년 영상위원회를 설립해 로케이션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 수상작인 '안티크라이스트' 등 유명 작품들이 이곳에서 촬영을 했다. 로케이션 영화들에 대한 연 5,000만 달러의 지원이 당근으로 작용하고 있다.
에센= 글ㆍ사진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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