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입맞춤'은 단테의 에 나오는 여인 프란체스카와 그의 연인 파올로가 입을 맞추는 한 순간을 형상화했다.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입을 맞추는 이 순간은 천국에서 보내는 한 순간이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보는 사람의 착각이고, 이건 중에서도 '지옥' 편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로댕 역시 '지옥문'을 위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원래는 왼쪽 문 하단부에 있다가 나중에 독립된 작품으로 제작됐다. 따로 떼어내자, 이 입맞춤 뒤에 숨은 이야기는 좀 흐릿해진 느낌이 없지 않다.
지옥에 간 단테가 직접 들은 바에 따르면, 그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프란체스카는 파올로의 형인 조반니의 아내, 즉 그의 형수였다. 두 사람은 영국 기사 랜슬롯과 기니비어 왕비의 사랑에 관한 책을 읽다가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에 이르러 그만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 입을 맞추게 됐다.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 조반니는 두 사람을 살해했고, 죽은 뒤 그들은 지옥에 떨어져 형벌을 받게 됐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게 또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이 아름다운, 하지만 그 사연을 알고 나면 좀 끔찍한 이야기를 다룬 이 조각에서 내가 눈여겨 본 건 두 사람의 손이 어디에 있느냐였다. 얼굴에도 표정이 있듯이 손에도 당연히 표정이 있다. 살펴보면 파올로의 손은 자연스럽게 아래를 향하는 반면에 프란체스카의 손은 위를 향한다. 특히 그녀의 왼팔은 파울로의 머리 뒤로 둘러서 그의 얼굴을 자신 쪽으로 당기는 형상이다. 프란체스카가 파올로보다 더 적극적이었다는 것, 그래서 사실은 파올로가 먼저 입을 맞췄다는 그녀의 말은 거짓이리라는 것을 이 조각의 형태로 짐작할 수 있다. 이 키스가 있기 직전에 그들이 읽은 랜슬롯과 기니비어 왕비의 키스 장면에서도 기니비어 왕비가 먼저 입을 맞추는 쪽이었다는 점에서도 이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다시 앞의 의문으로 돌아가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지옥도 감미롭지 않을까? 단테가 쓴 바에 따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프란체스카가 자신들의 사연을 단테에게 토로하는 이 장면에서 파올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눈물만 주룩주룩 흘린다. 왜 그러는지는 "지금은 내게서 없어진 아름다운 몸으로 이이를 사로잡았어요"라는 프란체스카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 거기가 어디든 아름다운 몸이 없는 곳이 지옥이다. 이게 바로 사랑의 본질이다. 역설적으로 영원하지 않기에 모든 건 아름답다. 로댕의 '입맞춤'은 곧 소멸할 몸들이기에 그토록 몸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로댕은 모델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 그 몸이 겪게 될 사랑의 모든 국면이 다 들어 있다고 믿었던 게 분명하다. 그는 예리한 칼로 시간을 잘라내듯이 조각했다. 웅크린 '안드로메다'의 등을 보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 순간 속에는 이후에 벌어질 이야기들이 모두 들어 있다. 사랑에 빠진 몸들은 미래의 이야기, 아직 오지 않은 이야기로 더욱 아름다워진다. 이제 우리는 그 뒤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다. 우리가 전시장에 걸린 젊은 카미유 클로델의 사진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후일담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움은 사라지리라는 것. 그 결과, 그녀의 얼굴, '청동시대'와 '입맞춤'과 '왈츠', 걸어가는 동작, 토르소 등이 남는다는 것. 그건 환영과도 같아서, 그래서 아름답다는 것.
나를 사로잡은 두 번째 조각은 카미유 클로델의 것이다. '로댕의 초상'. 그녀는 로댕의 얼굴을 만졌을 것이다. 아마도 사랑에 빠진 여자의 손으로. 그렇게 완성된 '로댕의 초상'은 지금 서울시립미술관 3층 전시실에 놓여 있다. 그 앞에 서면 스물여덟 살이 된 클로델의 손이 보일 때까지 그 초상을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그 손의 주인인 젊은 여자는 몇 년이 지나면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리라. 그 초상을 만들던 순간은 영원하지 않으리라. 로댕의 초상보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클로델의 손, 그 환영의 손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 파리 로댕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로댕의 대표작 180여 점을 선보이는 국내 최초ㆍ최대 규모의 로댕 회고전인 '신의 손_로댕' 전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8월 22일까지 열립니다. 1577_8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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