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진심이에요! 그 여잘 기다리는 메카는 없어요 … 자기 운명이 어떤 건지 빨리 알수록 그 여자한텐 그만큼 더 낫다구요.” 도회의 자유가 몸에 깊숙이 밴 엘사는 사막에 홀로 살면서 내면으로 침잠하는 육순의 조각가에게 마침내 속내를 드러내고 만다.
플래너코리아의 연극 ‘메카로 가는 길’은 진정한 자유가 가능한가를 묻는 작품이다. 부부젤라의 비명처럼 우리 의식의 허를 찌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가 아돌 후가드와 다시 맞닥뜨릴 기회다.
남편과 사별 후 15년 동안을 인적 없는 마을에서 은둔하고 있는 육순의 여성 조각가 헬렌, 그의 작품에 감사를 표현했던 유일한 인물 엘사,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드는 유일한 남성인 마리우스 목사 등 3명이 펼치는 풍경이다. 무대는 남아공이라는 독특한 사회는 물론 노인, 여성, 인권, 종교 등 인류 보편의 문제가 어우러져 뜻밖으로 풍성하다.
말미에서 헬렌이 촛불 하나를 끄며 엘사에게 던지는 말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의 메카는 여기까지야. 암흑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잘못이었어. 촛불을 밝히는 법을, 그 의미를 나한테 가르쳤던 것처럼, 이제는 촛불을 끄는 법을, 그 의미를 나
자신에게 가르쳐야만 해.” 2명의 여성이 자신들만의 낙원을 찾아 벼랑을 향해 전속력으로 차를 몰고 가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 류의 인식과는 차원이 다른 이유다. 이 연극이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 공존과 관용의 문제를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자리로 읽히는 것은 그래서다.
후가드는 한국 관객에게 낯익다. ‘어느 부도덕한 행위로 체포된 여인의 증언’ ‘아일랜드’ 등 인간의 자유와 이성을 억압하는 사회의 갈등을 그린 그의 작품은 국내에서도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다. 그는 또 2005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동명 영화의 원작인 소설 ‘초치’의 작가이기도 하다. 극작 생활 26년만이던 1986년에 나온 ‘메카로 가는 길’은 그의 사회의식과 극적 구성력이 만개하던 때의 작품으로 후가드에 대한 관심을 또 다시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페미니즘 연극으로 읽힐 수도 있을 무대의 또 다른 결절점은 목사로 분하는 서인석이다. 1978년 ‘아일랜드’에 출연했으나 이후 TV 출연 등 활동으로 무대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그는 개인적으로 지난 세월을 만회한다는 기분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 당시 ‘아일랜드’ 공연 때는 심의에서 걸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며 “이번 연극은 메카로 상징되는 개인의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라 21세기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무대가 후가드의 작품이라는 소식을 듣고 얼른 출연을 자청했다”며 “앞서의 작품보다 인간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보여주는 무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연출 송선호, 예수정 원영애 출연. 8월 6~22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02)3272-2334
장병욱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