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00사단(청성부대) 군사보호구역 남단 검문소 바로 앞 도로변 조금 높은 대지 위에 흉물스럽게 남아있는 시멘트건물 1동이 있다. 북한노동당 철원군 당사의 잔재이다.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 중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곳에 북한의 노동당사가 있을 수 있을까 매우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 이유는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으나 철원군 일대는 38선 이북으로 공산당의 관할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항복하고 난 후 일제가 36년 간 식민 지배해 온 한반도를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을 미국과 소련이 담당해 일본군 무장해제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분단의 씨앗이었다.
철원읍은 38도선 북에 있어 공산당 치하에 있게 되었다. 당시 인구 2만 여명으로 철원군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북한 공산당은 철원군 관할의 노동당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철원군청과 경찰서 등 철원읍의 중심지였던 이곳에 당사를 마련하기로 하고 1946년경 착공하여 주민들의 강제노력 동원과 1개 리에 백미 200여 가마씩 강제성금을 통해 당사를 완성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철원군의 북한 노동당 당사가 지금의 모습으로 남게 된 것은 6.25전쟁의 결과이다. 전쟁이 일어나고 1년 후인 1951년 6월 29일을 전후해서 이 일대는 사흘간 연합군의 총 공습을 받게 되었다. 철원읍이 폭격으로 초토화했는데, 공산당사 역시 이 때 폭격을 받아 피해를 입고 지금의 모습으로 남게 된 것이다. 당시 폭격을 담당한 비행기는 B29 폭격기였다고 알려져 있다.
인구 2만의 철원읍은 폭격 후 온전하게 남은 건물이 단 1채도 없었다. 결국 옛 철원읍은 흔적만 남겨둔 채 완전히 없어졌다. 대신 지금은 새로운 철원을 건설해 신철원이라 하고 폭격으로 없어진 철원읍을 구철원(舊鐵原)이라 부르고 있다. 폭격으로 파괴되고 남아있는 노동당사 건물의 잔재를 보면 지상 3층 규모에, 벽체는 철근을 넣지 않은 콘크리트 건물로 중앙 계단을 통해 층을 오르면 중앙에 복도가 있고 각방이 양측에 마련된 소위 소련식 건축공법으로 건립된 건평 약 570평의 권위건물이라 할 수 있다. 즉 평지에서 보다 높게 대지를 조성해 위엄을 갖추도록 했다. 내부구조를 보면 각 방마다 방음벽과 보안 유지를 위해 특수설계로 시공되었음을 알 수 있고 건립 시 보안을 위하여 열성 공산당원 외의 일반인 참여는 일체 못하게 했다고 알려져 있다. 완공 후 평양의 중앙당으로부터 지령 받은 극비사업과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연천지역 주민들의 동향 파악과 사찰은 물론 대남 공작을 주도한 곳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건물 잔재를 보면 당시 반공활동을 하던 사람들의 무자비한 고문과 학살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없어야 한다는 뜻에서 정부에서 2002년 등록문화재 22호로 지정 보호하게 되었다. 앞으로 구철원은 개발을 금지하고 발굴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안보의식의 전시장을 만들어 국민의 경각심을 고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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