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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소통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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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소통의 광장

입력
2010.07.1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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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 광장은 건물에 빼곡히 둘러싸인 중공(中空)의 공간이다. 언덕 위 도시를 향해 무심코 걷다 보면 어느 길을 가든 광장에 이른다. 시에나의 모든 길이 캄포 광장으로 통하듯 유럽 도시의 중심은 광장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성당과 시청과 집들이 들어서고 도시가 형성된다.

광장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고라(agora)는 시장, 사람이 모이는 곳을 의미한다. 시민들의 생활과 시정(市政), 토론과 정치적 의사 표명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시장이 서고 유랑극단이 공연을 하고 축제와 연중 행사가 있고 귀족들의 결투와 재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세의 생활상이 생생히 남아있는 캄포 광장처럼 유럽 도시의 광장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소통의 장소다.

광화문 광장이 논란에 휩싸인 가장 큰 이유는 광장 본래의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사용자인 시민을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공공성의 실현에 의미를 두는 공공 미술의 경우 어떤 미학적 내용이든 시민을 배제하거나 소통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광화문 광장으로 대표되는‘디자인 서울’을 실행하면서 공공미술에 대한 기본적 이해만 가졌어도 ‘불통의 광장’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공공미술은 무엇보다 시민들의 참여와 소통이 중심이다.

1930년대 미국의 뉴딜 정책으로 시작된 공공미술 제도는‘미술가를 위한 공공사업’‘건축 속 미술’‘공공장소 속 미술’ 등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건물 앞이나 빈 공간에 완성된 조형물을 세우거나 낡은 것을 무조건 없애고 새로 만드는 방식은 미학적 일방주의, 미술의 강요, 권위주의 미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공공미술은 1990년대부터 장소의 실질적 사용자인 사람을 중심으로 활성화 되었고 시민의 참여와 소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예술가의 개성과 주관을 중시하는 순수미술과는 달리 공공장소에서 행해지는 공공미술은 대중성을 확보 했을 때 가능하며 미술의 권위나 작품성보다는 시민의 요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세계의 공공 미술은 공공장소를 사회ㆍ 문화ㆍ 역사ㆍ 정치적 소통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시민 참여를 바탕으로 일상생활과 유기적 관계를 맺는 방식을 실천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처럼 낡은 것을 없애는 개발 위주의 디자인이 아니라 장소의 특수성과 역사성을 고려하여 맥락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의 아름다움을 구현한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은 좋은 예다. 기차역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하여 파리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미술관으로 변모시켰다.

광화문 광장의 디자인 논란에 이어 이번에는 서울광장 청계광장 세운광장의 개방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어느 신문 칼럼은 “광장을 정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려면 나무라도 심고 벤치를 놓는 방법은 어떨까”하고 제안 한다. 그리스 시대 아고라에도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서울 광장의 벤치와 나무심기 제안은 시민의 모임을 어떻게든 막아 보겠다는 것이다. 개방된 광장에서 집회와 시위가 열릴 것을 염려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벤치와 나무로 시민들의 의사 표현을 막을 수는 없다.

정치에서도 최근 중요해진 단어가 소통이다. 6ㆍ2 지방선거 이후 서울 시청 홈페이지에는 “더욱 열심히 듣고 소통하겠습니다”라는 글귀가 걸려있다. 광화문 광장과 지방선거의 경험에서 보았듯이 정치도 미술도 광장도 소통이 핵심이다. “소통하겠습니다”라는 서울시의 다짐이 있는 만큼 서울에 또 다른 불통 광장들이 생기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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