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의 천국’(1991)과 ‘제8요일’(1996)로 1990년대 한국 관객들에게 이름을 알렸던 벨기에 출신의 자코 반 도마엘(53) 감독이 제14회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참가를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도마엘 감독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며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전해주는 앞의 두 영화로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마니아를 형성했다. 특히 ‘제8요일’은 다운증후군 장애 배우인 파스칼 뒤켄과 프랑스 유명 배우 다니엘 오테이유에게 칸국제영화제 최우수남자배우상을 안겨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도마엘 감독은 데뷔작인 ‘토토의 천국’으로 우수 신인 감독에게 주는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기도 했다.
18일 오후 부천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넉넉한 체구의 그는 조금은 난해한 자신의 새 영화와 근황을 넉넉한 웃음으로 소개했다. “3D 영화보다 젊은 세대들이 작은 카메라만 들고 만드는 영화가 더 흥미롭다”고 말하는 그는 몽상의 힘을 신봉하는 듯했다. 부천영화제에선 그의 신작 ‘미스터 노바디’가 상영 중이다.
‘미스터 노바디’는 14년만의 신작이다. 그는 “‘제8요일’ 이후 이 영화에만 몰두해왔다. 시나리오 쓰는데만 7년이 꼬박 걸렸다”고 말했다. ‘미스터 노바디’는 유전공학이 극도로 발달해 모두가 영원한 삶을 얻게 되는 2093년 인류 최후의 죽음을 맞는 노바디라는 인물을 통해 사랑과 삶, 시간의 의미를 되짚는다. 노바디가 3명의 여인과 사랑하고 결혼하고 각각 아이까지 낳은 것으로 묘사되지만 사실과 허구의 구분이 불분명하고 시간은 뒤섞인다.
영화 속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를 낳으며 끝 모르게 이어진다. 종잡을 수 없는 표현 방식이지만 영화가 마지막을 향할수록 사랑의 소중함이라는 주제는 명확해진다. 그는 “영화든 연극이든 소설이든 대체로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 모아지는데 나는 나뭇가지처럼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관객들에게 해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정치가나 광고인은 간단하게 이야기할 사안을 예술가는 복잡하게 이야기하기 마련”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데뷔 뒤 19년 동안 만든 장편 영화는 고작 3편. 그는 “아마 나중에 손주들에게 내 영화를 다 보여 주는데 하루면 충분할 것이다. ‘할아버지는 도대체 뭘 했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을 듯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차기작은 초현실적 코미디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느님이 (벨기에) 브뤼셀에 살며 딸과 갈등을 빚는 내용”이라며 “브뤼셀은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곳으로 영화 속 하느님은 심지어 맥주조차 안 마신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부천=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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