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뤄 낸 한국축구대표팀이 차기 사령탑 선임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고 있다. 당초 대한축구협회는 허정무 전 감독과 재계약 할 방침이었으나 허 전 감독이 고사하는 바람에 새 감독을 뽑아야 할 상황이 됐다.
그러나 당초 국내 지도자를 뽑는다는 전제하에 12~13명의 후보군을 놓고 7월 중순까지 선임 작업을 마무리 할 계획이었으나 유력 후보들이 고사하는 바람에 일정이 미뤄지더니 급기야 ‘외국인 감독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까지 대두된 상태다.
4년 뒤 브라질 월드컵을 책임질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최고의 감독으로 선임한다는 데 이의가 없다면 국내 지도자든 외국인 지도자든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국내에 지도자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다 기술위원장도 아닌 조중연 협회장이 나서서 외국인 감독 운운 했다는 것은 모양새가 썩 좋지 않다.
내로라하는 국내 지도자들이 고사하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추정된다. 4년간의 임기가 보장된다기 보다는 중간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 뒤에 협회의 신임을 얻고 있는 유력한 차기 감독 후보인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월드컵까지 4년 동안 감독직을 보장한다면 국내 지도자들 중 맡고자 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허정무호’가 그랬듯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브라질 월드컵까지 예정돼 있는 수 십 경기를 다 이길 수도, 좋은 내용을 보여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대표팀 감독 자리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과 같다. 중요한 일전에서 패하거나 졸전을 벌이면 매스미디어와 축구팬들이 밑에서 흔들어대니 떨어지거나 수모를 참아내고 버텨야 하는 어려운 자리다. 역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중에서 명예롭게 퇴진한 사람은 거스 히딩크 감독과 허정무 감독 정도다.
대표팀 감독은 4년 뒤의 큰 그림, 예를 들어 월드컵 본선에서의 16강이나 8강 진출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지만 매스미디어나 축구팬들은 조급증에 결코 느긋하게 기다려 주지 않는다. 감독과 여론간의 괴리는 다른 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차기 감독 선임은 국내 지도자가 됐든 외국인 지도자가 됐든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8월에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 등 올해 잇단 친선경기가 있고 내년 1월에 아시안컵이 있지만 4년 뒤를 내다보고 최상의 선택을 해야 한다.
국내 지도자와 외국인 지도자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국내 지도자는 선수 파악 등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효율성에서 유리하지만 성적 부담 등 소신 있는 행보가 어려울 수 있다. 외국인 지도자의 경우는 선진 축구 접목이나 신선한 시각을 기대할 수 있지만 선수 파악과 한국 축구 문화 적응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다. 더욱이 국내 지도자 중 유력한 후보들이 잇달아 고사하고 있는 가운데 떠밀리듯 국내 지도자가 차기 사령탑에 오른다면 최상의 선택이었느냐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고, ‘꿩 대신 닭’이 아니냐는 부정적 여론에 휘말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차기 감독의 향후 행보가 가시밭길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외국인 감독도 지도력과 명망을 갖춰야 한다. 예전의 본 프레레 감독은 네임밸류가 약했고, 핌 베어벡 감독은 무게감이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축구협회와 기술위원회는 눈 앞의 성적에만 연연해 하지 말고 최소한 한국 축구의 십년대계를 위한 감독 선임에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여동은 스포츠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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