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민주주의는 물론 대의정치의 가능성이 모두 봉쇄됐던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치행위는 오직 식민상태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저항의 정치’밖에 없었을까.
윤해동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는 이런 인식틀을 뛰어넘을 것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2000년대 중반 그가 고안해낸 개념이 ‘식민지 공공성’이다. 식민지시기의 전기, 통신, 교통, 상수도, 학교 같은 공공재(公共財)의 배분을 둘러싼 이른바 생활정치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 개념에 대한 반론은 격렬하다. 생활정치를 펼 수 있었던 이들은 관리와 지식인, 학생을 중심으로 한 일부 조선인들에 불과했고, 소위 공론의 장도 식민권력의 통제를 받는 제한된 공간이었다며 식민지 공공성 개념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보는 ‘환상론’이 대표적이다.
(책과함께 발행)는 윤 교수와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나미키 마사히토 일본 페리스여학원대 교수 등 12명의 국내외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식민지 공공성을 주제로 쓴 논문을 엮은 책이다. 관련 논쟁을 정리하고 이 개념을 적용한 다양한 연구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김영미 국민대 교수는 ‘일제시기 상수도 문제와 공공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식민지시기 서울의 상수도 보급 문제와 관련된 식민권력과 조선인들 사이의 다툼을 다뤘다. 1920~30년대 대도시를 중심으로 보급된 상수도는 근대화의 상징과 같았는데 주 이용층은 일본인들이었다. 우물물, 하천수 등 자연수를 마시던 조선인들은 1920년 콜레라의 창궐로 일본인보다 많은 사망자가 나오자 식민당국을 상대로 수도를 요구하는 집단행동을 벌였다. 주민들은 진정서 제출, 언론 기고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 김 교수는 “수도를 둘러싼 주민들의 투쟁은 공공성의 실현을 위한 것이었다”며 “이 과정에서 수도 혜택의 민족적 차별, 고율의 수도요금 등 경성부의 반(反)공공적 성격들이 비판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기훈 목포대 교수는 ‘1920, 30년대 보통학교와 지역사회’라는 논문에서 보통학교(초등학교) 설립을 둘러싼 지역간 경쟁을 통해 식민지 공공성을 논한다. 조선총독부는 3개 면에 1개 보통학교 설립이라는 ‘3면 1교’ 정책을 표방했는데 교육열이 고조되던 당시 학교의 위치를 어디로 할 것인가를 두고 지역간에 치열한 대립이 벌어지는 사례가 속출했다. 경쟁관계의 지역민들은 진정서 제출, 면민대회 개최, 소송 제기, 등교거부 등도 불사했다. 이 교수는 “학교 유치를 위한 경쟁이나 대립은 항상 더 많은 주민들의 이익이라는 공공성의 원칙을 표방하며 진행됐다”며 “공공성의 문제를 좀더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학교 설립과정뿐 아니라 학교 운영, 교육내용 등과 지역주민들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도 보충돼야한다”고 말했다.
저자들은 식민지 공공성 개념의 한계에 대해서도 자평하고 있다. 나미키 마사히토 교수는 “‘공공성’ 개념이 식민통치의 폭력성이나 이질성을 은폐하고 호도하고 분식하는 것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협소하다는 것도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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