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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초창기 번역사' 연구서 2권 낸 김욱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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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초창기 번역사' 연구서 2권 낸 김욱동 교수

입력
2010.07.1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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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자 겸 번역가, 한국 근대문학 연구자로 다방면에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욱동(62ㆍ사진) 한국외대 교수가 한국 초창기 번역사를 다룬 연구서 (소명출판 발행)를 함께 펴냈다. 김 교수는 앞의 책에서 1894년 갑오개혁부터 1927년 일본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이 만든 외국문학연구회의 동인지 ‘해외문학’이 발간되기 직전까지 국내 번역의 발전 과정을 면밀히 살폈고, 뒤의 책에선 이 시기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대표적 번역가 3명을 연구했다. 한국 근대문학의 발전에 번역이 미친 영향에 대해 김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_ 번역이 한국 근대문학에 영향을 끼친 구체적 사례는.

“근대소설의 전신인 신소설의 작가들은 대부분 처음엔 번역자로 활약했다. 그래서 신소설은 번안소설의 형태를 띠었다. 예컨대 조중환의 은 영국 여성 작가 조지 엘리엇의 를 번안한 일본 소설을 재차 번안한 작품이다. 시에서는 1910년대 말 김억이 주간 ‘태서문예신보’에 베를렌 등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번역 소개하면서 박종화 염상섭 이상화 홍사용 등이 상징주의와 퇴폐주의의 세례를 받았다.”

_ 초창기 번역은 왜 인문사회 분야보다 문학 작품에 쏠려 있었나.

“번역자들이 대개 외국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초기 번역사에서 역사, 정치 서적은 사학자나 언론인이, 문학 작품은 문학가나 문학지망생이 주로 번역했다.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번역가들은 재미있는 문학 작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독자들을 계몽하려 했다. 최남선이 ‘소년’ ‘청춘’ 같은 종합잡지를 만든 뒤 외국문학을 많이 번역한 것도 이런 이유다.”

_ 초창기 번역의 한계는.

“근대 번역가들은 원문이 아닌 일본, 중국의 번역물을 중역해 서구 문명을 섭취하려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근대는 ‘중역(重譯)한 근대’다. 그렇다보니 주체적 입장에서 서양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 번역 대상의 선택에도 편향이 따랐다. 문학 분야에선 영미보다 유럽 작품들이 많았고, 계몽적이고 오락적인 작품이 주로 번역됐다. 국가 안위가 불안정하다 보니 애국심을 고취하는 작품들, 예컨대 역사서라면 전쟁사, 위인전, 구국 영웅전 등이 많이 번역됐다.”

_ 한국 번역사의 시대 구분을 한다면.

“이번 책에서 다룬 1894~1927년이 제1기로 중역을 통해 서구 문헌을 처음 번역한 시기다. 제2기는 1927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로 일본 유학생들이 번역의 중심이 됐다. 한국이 저작물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에 가입한 1996년까지가 제3기로, 주로 직역 방식으로 외국 문헌을 무분별하게 번역한 단계다. 이후 지금까지는 번역의 수준, 관련 제도 등이 어느 정도 본궤도에 들어선 제4기로 볼 수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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