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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의 대화] 의학전문대학원 폐지는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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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의 대화] 의학전문대학원 폐지는 퇴행

입력
2010.07.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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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ㆍ치의학 교육제도 개선계획을 발표하면서 전문대학원 체제가 동요하고 있다. 각 대학에 의ㆍ치의학 교육학제의 선택 자율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사실상 의대ㆍ치대 체제로 복귀하는 길의 출발이라는 관측이 많다.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체제의 동요가 법학전문대학원과 약대 6년제 계획 등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의전원 체제가 동요하게 된 데에는 교수들의 불만과 반발이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한다. 속 사정을 전하는 보도에 의하면, 대학의 우수인재 확보 욕심, 의대 동창회의 압력, 서열주의에 잘 어울리지 않는 나이 많은 학생의 입학에 대한 불만 등이 작용하고 있다.

혁신과 성장의 기회 포기

몇몇 대학에서는 의대ㆍ치대 체제로의 전면 복귀를 결정했다고 하고, 또 몇몇 대학은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우수 학생을 조기에 모집해서 수월하게 대학을 운영하겠다면, 의대ㆍ치대 체제가 좋을 수도 있다. 현재의 대학서열 구조에서의 위치를 이용하여 일종의 지대(地代)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세계적 차원의 혁신과 성장의 기회를 미리 포기하는 것이다.

현재의 분과학문 체제는 지난 1~2세기 동안 형성된 것인데, 이제는 새로운 지식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지식구조의 변화는 대학제도에 변화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자연과학ㆍ사회과학ㆍ인문학을 기본으로 하는 근대과학의 지식구조에서는 과거의 ‘전문’ 지식들은 변두리에 고립적으로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의학ㆍ법학ㆍ경영 전문대학원이 대학제도의 중심에 들어오면서 이들 ‘전문’ 지식이 인접 분과학문을 통섭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미 알려진 전문지식의 전수에는 위계적인 명령관계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새롭고 복잡한 지식을 찾고 만드는 데에는 다양하고 혼합적인 조직관계가 더 유리하다. 선진 지식을 모방하고 추격하는 단계를 넘어서려면 교육제도의 조직 혁신이 필수적이다.

선진국의 전문대학원 체제는 다양한 분과학문의 교통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시카고대학 로스쿨에 재직한 로널드 코스는 199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수상 이유로 거론된 2 개의 논문은 기업의 본질을 거래비용 개념으로 설명한 것과 외부효과를 시장의 자발적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로널드 코스의 생각은 거래비용경제학 재산권경제학 법경제학을 형성하는 단초가 되었다. 그는 주류경제학의 틀을 넘어서는 창조적 사고를 전개했는데, 여기에는 로스쿨에 재직하면서 접한 다양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순수 혈통을 중시하는 폐쇄적 교육단위보다는 개방과 혼합을 추구하는 것이 과학혁명의 추세에 부합한다. 신경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에릭 캔델은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분자생물학 신경과학 심리학 등을 수렴했는데, 이러한 업적이 가능했던 것은 개방적인 대학제도 덕분이기도 했다. 그는 학부에서 역사와 문학을 공부했는데, 정신분석에 흥미를 느껴 대학 성적만으로 의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뇌 해부학 수업이 계기가 되어 생물학자의 길에 들어섰다.

도전의 어려움 피하지 말아야

한국경제 전체의 성장동력 측면에서도 다양한 분과학문 배경을 포용하는 전문대학원의 성공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경제가 성장 추세를 유지하려면 보다 고도화한 산업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산업과 지식이 중요해지는 시기나 부문에서 혼합과 잡종을 장려하는 조직 혁신과 문화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전문대학원을 전면 폐지하고 ‘좀 더 전문적인 인재를 좀 더 어렸을 때부터 양성하는’ 체제로 획일화한다면 대학과 산업의 미래를 여는 생명력은 질식할 것이다.

의전원 운영에 많은 문제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전면 폐지하는 것은 경쟁과 개방을 포기하고 독점과 폐쇄의 길로 가는 것이다. 대학과 정부가 도전과 혁신의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에서 도피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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