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최인훈 선생의 과 를 읽었을 때 주인공 독고준의 미래가 궁금했습니다. 독고준은 예컨대 그의 친구 김학이 다소 이상주의, 행동주의적인 데 비해 소극적이고 회의적인 성격을 지녔습니다. 답은 없고 의심과 질문만 있는, 어느 사회에서나 환영받기 어려운 주변부적 인물이죠. 하지만 이런 의심과 질문 같은 것이 한 공동체의 이념적 광기를 눅여줍니다.”
소설가ㆍ저널리스트인 고종석(51)씨가 장편소설 ‘독고준’ 연재를 시작했다. 지난 12일부터 인터파크 도서 웹진 북앤에 연재되고 있는 이 소설은 고씨가 장편으로는 (1993) 이후 17년 만에 발표하는 작품이다. 그는 선배 소설가 최인훈(74)씨의 1960년대 발표작 의 주인공 독고준을 이 소설의 중심인물로 삼는 특별한 시도를 했다.
4ㆍ19혁명 한 해 전인 1959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는 “한국 사회의 문명, 예술, 문학 전반에 걸친 폭넓은 성찰적 논변을 펼친 매우 이채로운 텍스트”(문학평론가 우찬제)로 평가받으며 최인훈씨의 소설 중 과 더불어 가장 자주 논의되는 작품이다. 이 두 소설에서 월남민 출신의 국문과 대학생으로 도도한 지성을 과시하는 독고준은 그 출신 배경이나 방대한 관심사, 회의주의적 태도 등으로 그 자신 월남민 출신인 작가 최인훈씨의 문학적 페르소나로 여겨진다.
고씨의 소설에서 독고준은 ‘얼음처럼 차가운 회의주의와 수정처럼 투명한 문체’로 인정받는 소설가로 활동하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날 자살해 일흔네 살의 삶을 마감한다. 작중 화자는 대학 교수이자 동성애자인 독고준의 장녀 원. 아버지를 깊이 존경하는 그녀는 아버지의 1주기에 유품인 일기장을 어머니로부터 건네받는다. 4ㆍ19혁명 즈음에 시작돼 2007년 대선 때 멈춘 47년 간의 기록을 통해 그녀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온 부친의 생애와 지적 여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독고준을 소설로 부활시킨 이유를 고씨는 “우리 사회가 이념 과잉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잉된 이념 가운데 어떤 것은 돈과 밀접히 관련돼 있기도 하다. 독고준은 인간에 대한 믿음, 특히 집단 속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인 만큼 오늘날의 한국 상황을 들여다보기에 적절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그는 또 “최인훈 선생님은 당초 독고준을 주인공으로 한 3부작 소설을 계획했었다”며 “이번 소설이 를 이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활보다 사색이 승하다는 점, 주변적인 것을 옹호한다는 점에선 앞선 두 작품과 닮은 꼴”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설의 흥미로운 설정 중 하나는 독고준이 활달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한 미국 유학파 화가 이유정 대신 순종적인 성격에 독실한 기독교 전도사였던 김순임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는 점. 에서 독고준은 이 두 여성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다가 소설 말미에서 이유정 쪽으로 마음이 기운 듯한 모습을 보였다. 고씨는 “독고준의 회색인적 성격이 결국 김순임을 배우자로 택하게 했을 거라고 상상했다”며 “내 소설에서는 독고준과 독고원에 집중하고 싶어서 상대적으로 발언권을 많이 줘야 하는 이유정을 피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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