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니덤 등 지음ㆍ이성규 옮김
살림 발행ㆍ328쪽ㆍ2만3,000원
“중국 문화권에 속하는 모든 민족 중에서 한국인은 과학, 기계기술 및 의학에 가장 관심이 컸다.” 조선이 유교와 당파싸움으로 과학기술이 정체 상태에 있었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는 이 말은 중국과학사 연구의 세계적 석학 조지프 니덤(1990~1995)이 자신 있게 한 말이다.
조지프 니덤 등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연구자들 4명이 조선의 왕립 기상대이자 천문관서인 서운관(書雲觀)에서 1392년부터 1776년까지 제작된 천문의기(天文儀器)와 성도(星圖) 등에 대한 연구성과를 정리한 것이 이다.
1986년 케임브리지대에서 처음 출판된 이 책은 원나라의 천문시계 간의(簡儀)를 복사한 혼천의(渾天儀), 물시계 자격루(自擊漏),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등 조선 세종 무렵에 만들어진 각종 천문의기들의 작동원리를 고증해 밝혀냈다. 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어수선했던 시기를 지나 조선 후기 현종 때 만들어진 혼천시계(渾天時計), 천문도 등도 분석했다. 현재 남아있는 천문의기들과 ‘세종실록’ ‘증보문헌비고’ 등 역사서를 연구해 쓴 이 책은 기술서적에 가까울 정도로 세밀하다.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조선의 과학기술 수준에 대한 높은 평가다. 저자들은 조선의 천문학이 원나라의 궁정 천문학자 곽수경(郭守敬)과 베이징에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 천문학자들의 작품과 저술에 바탕을 두고 있긴 하지만 의미있는 한국 특유의 성질을 갖고 있다고 확언한다. 저자들은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이 만든 새로운 종류의 의기들로 대체될 때까지 중국과 조선 조정이 소유하고 있던 천문의기는 세계 최상의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런 찬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몇 가지 논란거리를 남기고 있다. 조선이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했다는 데 회의적이고, 자격루 작동 원리의 해석에서 한국의 학자들과 차이가 있으며, 1669년 제작된 혼천시계의 시계장치가 일본에서 제작된 시계에서 떼어온 것이라는 부분이다. 기술적인 설명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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