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메랄드 물빛… 설산… 神이 세공한 보석
모든 순정한 빛이 이곳에 다 모였나 보다. 이른 아침 서둘러 찾아간 밴프의 루이스 호수. 캐나디안 로키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경승지다. 에메랄드빛 호수는 주위를 감싼 가문비나무숲의 싱싱한 초록과 아침 햇살 반짝이는 바위산, 거대한 빙하의 눈부신 흰 빛에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 호텔의 우아한 외벽 등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한 호수에 둥실 떠있는 빨간 카누는 황홀한 눈맛을 더해준다. 거대한 아름다운 보석을 마주한 느낌이다.
휘황찬란한 루이스 호수의 풍경에 한참을 넋 놓고 있다가 호숫가에서 이어지는 트레일을 올랐다. 루이스 호수의 감동을 한 발 한 발 깊게 새겨 넣을 수 있는 트레킹을 떠났다. 가문비나무 숲길로 접어들자 짙은 초록이 사방을 에워쌌다. 나무 사이로 가끔씩 루이스 호수가 보였다. 에메랄드빛 물색이 더욱 매혹적이다. 조용한 숲 속에서 딱다구리가 나무를 쪼아댔다. 그 소리가 숲을 공명하더니 호수 위를 맴돌아 하늘로 퍼져 올랐다.
트레일 중간에서 미러(Mirror) 호수를 만났다. 빅 비하이브(Big Beehive)란 벌통을 닮은 기암 봉우리 바로 밑에 말갛게 물이 고여 있는 호수다. 이 호수는 이름 그대로 하늘을 비추는 동그란 거울이다. 거울 속 하늘은 옥색이다. 파란 하늘과 초록의 가문비나무숲, 만년설을 인 산봉우리가 함께 녹아 들어 만들어낸 옥빛이다.
갑자기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말을 타고 트레일을 유람하는 이들이다. 말은 호숫물에 목을 축이느라 바빴고, 말을 탄 이들은 감탄하느라 바빴다. 모두들 상기된 얼굴로 '엑셀런트, 원더풀, 그레이트'등을 내뱉었다.
미러 호수를 등지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그네스 호수로 향하는 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친 물소리가 들려왔다. 아그네스 호수에서 떨어지는 폭포 소리다. 그 물길을 따라 올라가 만난 아그네스 호수. 어쩌면 이렇게 명징할 수가.
직전에 만났던 루이스 호수나 미러 호수와는 또 다른 물빛이다. 동정녀 순교자인 성녀 아그네스의 이름에 딱 걸맞은 순결한 물빛이다. 물은 한없이 맑았다. 모든 사물을 제 빛 그대로 비춰낸다. 물속의 세상은 물 밖보다 투명했다.
아그네스 호수 옆에는 통나무로 지어진 유서 깊은 찻집이 있다. 만년설에 둘러싸인 맑은 호수를 내려다 보며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그네스 호수를 지나 이번에는 리틀 비하이브를 향했다. 미러 호수 옆의 빅 비하이브처럼, 벌통을 닮은 기암절벽이다. 리틀 비하이브로 가는 길엔 하늘이 시원하게 뚫렸다. 주변의 설산과 어깨를 겯고 발 아래의 루이스 호수와 미러 호수를 감상하며 걷는 길이다. 길섶엔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나 걸음을 더욱 상쾌하게 했다.
루이스 호수를 내려다 보는 최고의 전망대인 리틀 빅하이브를 반환점 삼아 다시 지나온 트레일을 걸어 루이스 호숫가로 내려왔다. 그새 날이 많이 뜨거워졌다. 오후의 묵직한 햇살을 받은 호수에선 오전에 받았던 그 청초함을 느낄 순 없었지만 호숫가를 가득 메운 관광객들은 지금의 풍경과 물빛 만으로도 충분히 감탄하는 분위기다.
빙하가 녹아 내린 물이라 무척 차가운 데도 수영복 차림의 젊은이들은 물 속에 첨벙 뛰어들었다. 호수 위에선 카누 10여 대가 여러 개의 파문을 아름답게 그려 넣고 있었다.
밴프=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2281m 전망대서 내려다 본 밴프타운 '장쾌'
스탬피드 축제 기간 캘거리는 시내 전역이 축제로 들뜬다. 도시 전체에서 카우보이 모자의 행렬이 지난다. 축제 기간엔 일반 직장인들도 청바지에 부츠를 신고 회사에 출근한다. '스탬피드의 아침'도 축제에선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축제기간 큰 건물 등에서 돌아가며 무료로 아침을 제공한다. 베이컨과 소시지, 팬케이크로 차려지는 이 아침 식사를 먹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나타난다.
캘거리 인구는 100만 정도. 스탬피드 축제를 찾는 이들의 수는 13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알버타의 주도는 에드몬튼이지만 캘거리는 알버타의 경제수도다. 캐나다 도시 중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보인다. 알버타에 매장된 샌드오일에서 석유 생산이 본격화하면서 돈이 몰리고 사람이 몰려들고 있다.
밴프 국립공원의 시작점은 밴프타운이다. 철도 노동자 3명이 온천을 발견해 지금의 국립공원을 있게 한 출발점이다. 오랜 동안 관광지로 커왔고 매년 400만명이 찾는 곳임에도 도시는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건물들이 높지 않아 고도(古都)에 온듯한 느낌을 준다. 날이 어두워지면 시내 찻길에 순록이 서성대고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그리즐리 곰이 활보하는 곳이다.
밴프 곤돌라를 타면 밴프 타운을 한 눈에 굽어보는 해발 2,281m의 설퍼산 전망대에 올라갈 수 있다. 밴프 시내를 흐르는 보우 강과 저 멀리 미네완카 호수 등이 펼쳐내는 풍경을 완상할 수 있다. 전망대 옆 샌슨즈 피크까지는 하늘길이 놓여졌다. 1km 가량 길이의 능선을 따라 난 트레킹 코스다. 스카이 워크라 불리는 이 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곤돌라 탑승장 옆에는 어퍼 핫 스프링스라는 온천이 있다. 우리 워터파크와 비교하면 시설은 작고 초라하다. 단 물의 효과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풍광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밴프 타운을 끼고 도는 보우 강에서 즐기는 카누도 타볼 만하다. 도시의 강이지만 카누를 타면서 비버 독수리 등 다양한 야생 동물을 만날 수 있다.
밴프 타운 인근의 미네완카 호수는 댐을 만들면서 조성된 인공호수다. 호수 주변을 두른 산자락들의 장쾌함이 압권이다. 유람선을 타면 길이 27km 호수를 한 바퀴 둘러 볼 수 있다. 고요한 호수엔 송어 낚시를 하는 작은 보트들이 눈에 띈다. 빙하가 녹아 내린 호수는 한 여름에도 수온이 7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캘거리·밴프=글·사진 이성원기자
■ 캘거리 스탬피드 축제 '야생을 길들이며 카우보이의 야성이 깨다'
때론 마초가 그립다. 문득 너무도 초라해진 스스로를 발견할 때, 단순하고 무식하단 욕을 들을지언정 그저 당당하기만 한 마초가 마냥 그립다. 야생과 거리를 두면서 야성을 잃어버리고 만 이 시대. 무한한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거세되지 않은 그 남성성이 그립다.
캐나다 알버타의 캘거리를 방문했을 때 마침 그곳에선 스탬피드(Stampede)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지구상 최고의 야외 쇼'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축제다. 알버타 지역은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목축지대다. 로키에서 뻗어 내린 알버타의 고지대 드넓은 평원은 소들을 키우기에 최적의 땅으로 캐나다에서 생산된 소고기의 70%가 알버타 산이라고 말한다. 오래 전부터 카우보이 문화가 깊게 뿌리를 내린 고장이다.
올해 스탬피드 축제는 9일 시작해 18일까지 열흘간 열린다. 축제는 캘거리 다운타운을 관통하는 대규모 퍼레이드로 문을 연다. 750마리의 말과 3,500여명이 참가해 퍼레이드를 펼친다. 퍼레이드 동선(4.5km) 한 바퀴를 도는 데만도 2시간이 더 걸린다. 퍼레이드 하는 말들이 길에 쏟아내는 말똥이 2톤에 달해 이걸 처리하는 데도 꽤나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한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속에서 어깨를 겯고 퍼레이드를 지켜본 후 스탬피드 공원으로 들어갔다. 본격적인 축제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스탬피드 공원은 커다란 놀이공원이다. 각종 놀이기구들이 화려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공원의 가장 큰 건물은 로데오 경기장이다. 스탬피드 축제의 중심인 로데오 경기, 마차 경기, 이브닝 쇼 등이 진행되는 곳이다.
정오의 햇살 아래서 드디어 로데오 경기가 펼쳐졌다. 경기장엔 말똥 냄새가 낮게 깔렸다. 시끌벅적했던 경기장에 아주 짧은 순간 긴장된 적막이 찾아왔다. 로데오가 막 시작되는 시점이다. 드디어 우리의 문이 열려 말이 뛰쳐나오는 순간 관중석에선 곧바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말은 미친 듯 날뛰었고 등에 탄 카우보이는 어떻게든 버티겠다고 안간힘을 쏟아낸다. 성이 난 말은 앞발을 높이 들었다가 다음엔 뒷발질을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빙글빙글 돌면서 등에 탄 카우보이를 떨궈내려고 한다. 카우보이의 몸도 그 리듬에 맞춰 출렁거린다. 카우보이의 몸이 말의 리듬을 놓치는 순간, 몸뚱이는 공중에 치솟았다가 땅으로 떨어진다.
폴폴 이는 흙먼지 속 말과 카우보이가 어우러진 춤사위는 마치 비보이의 쇼를 보는 듯하다. 경기 점수는 카우보이가 버틴 시간과 함께 기수의 자세, 말의 자세 등이 종합 평가된다고 한다.
다음 경기는 송아지 올가미 걸기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송아지와 말에서 몸을 던지는 카우보이간의 숨막히는 긴장감을 엿볼 수 있는 경기다. 다음은 카우걸들이 나와 3개의 커다란 나무통을 누가 빨리 돌아 나오느냐를 겨루는 배럴 레이싱 경기를 펼친다. 마지막은 로데오 경기의 하이라이트인 성난 소에 올라 타기다. 소의 몸통을 두꺼운 밧줄로 옥죄어 고통스럽게 한 뒤 그 등에 올라타 버티는 경기다. 소는 시작도 하기 전에 우리가 부서져나가도록 몸부림을 쳐댄다. 미쳐 날뛰는 소와 어떻게든 버티려는 카우보이의 대결. 육중한 몸짓의 강렬한 그 무엇이 맥동한다. 축제 기간 매일 로데오를 진행해 마지막 날 최종 결승전에서 최고의 카우보이를 뽑는다고 한다.
경기장에 어둠이 내릴 무렵 또 다른 경기가 펼쳐진다. 스탬피드의 제일 큰 자랑인 '척웨건(Chuckwagon)', 마차경기다.
스탬피드 축제가 시작된 것은 1912년이지만 척웨건은 1923년부터 도입됐다. 척웨건은 팀별대항 방식이다. 4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1명의 마부가 몰고, 그 마차에 4명의 말 탄 카우보이가 뒤따른다.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4명의 카우보이는 텐트의 깃대 2개와 난로를 상징하는 큰 통을 마차에 싣는다. 짐이 실리면 마차는 바로 내달리기 시작해, 출발점 부근에 설치된 큰 나무통 2개를 돌고 난 뒤 긴 타원형의 주로를 내달린다. 같은 팀인 4명의 카우보이는 각자 자신의 말에 올라타 마차를 뒤쫓아 함께 달린다.
한 경기당 모두 4팀이 참가해 겨룬다. 팀 당 8마리씩이니 모두 36마리의 말이 출동하는 경기다. 동시에 수십 마리의 말발굽 소리가 요동을 치고, 덜컹거리는 마차소리도 긴장감을 더한다.
경기장엔 낮 보다 더 많은 이들이 찾아 척웨건을 즐긴다. 모두들 화려한 장식의 버클을 한 청바지에 부츠를 신고,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 쓰고 와 축제를 함께 한다. 누가 우승하는지 보다는 그저 흙먼지 속의 야성을 즐기는 눈치다. 자신의 몸 속에 꿈틀대는 카우보이의 마초를 즐기는 시간이다.
척웨건이 끝나면 경기장은 화려한 이브닝 쇼를 펼쳐낸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오토바이쇼와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공연, 유명 코메디언의 스탠딩 쇼가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무대를 달군다.
캘거리=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여행수첩/ 스탬피드
● 국적기나 에어캐나다를 이용, 밴쿠버를 들러 캘거리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한항공은 25일부터 8월26일까지 인천과 캘거리를 잇는 직항편을 운항한다. 매주 화목토 오후 6시20분에 비행기가 뜬다.
● 캘거리에서 밴프까지는 차로 2시간 가량 걸린다. 밴프에서 루이스 호수까지는 4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캘거리 다운타운에서는 일방통행 길이 많으니 직접 운전해 이동할 경우 길 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출퇴근 시간대엔 교통정체도 상당하다.
● 캐나다에서 전기는 110 볼트, 화폐는 캐나다 달러를 사용한다. 알버타관광청 한국사무소 www1.travelalberta.com/KR-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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