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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어머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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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어머니 고맙습니다

입력
2010.07.1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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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애간장이 없다. 내가 벌써 다 태워버렸다. 어머니는 속이 없다. 내가 이미 다 녹여버렸다. 어머니 속을 끓여도 바다만한 무쇠 솥에 그 바다를 다 넣어 한 줌 소금만 남게 할 정도로 팔팔 끓였다. 어머니 속을 썩여도 무쇠 천만 근을 독에 넣어 그 쇠가 맹물이 될 정도로 아프게 썩였다.

상업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어떤 일로 어머니께 대들었다. 어머니는 화가 나 집을 나가라고 했다. 무릎을 꿇고 빌어도 시원찮은 마당에 나는 집을 나와 버렸다. 그것도 어머니 보는 앞에서 앨범의 아버지 사진을 꺼내 들고 나왔다. 그건 어머니께 나는 아버지 자식이지 어머니 자식이 아니라는 시위였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 대책 없이 세상을 떠나시고 밥장사 술장사로 우리 남매를 키워온 어머니인데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는 철들어 알았다.

불혹과 지천명 사이 나는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자식이 먼저 죽는 일이 부모에게 참혹한 근심을 남기는 일이라 하여 ‘참척(慘慽)’이라고 하는데, 내 병상을 지키며 어머니 오장육부 무엇 하나 온전하게 남았겠는가. 나를 낳은 것도 어머니이고 나를 살린 것도 어머니이다. 어머니 살을 녹여 나를 낳고 어머니 피를 녹여 나를 살렸다. 오늘은 어머니께서 나를 낳으신 날이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께 오체투지로 삼천 배를 올리는 날이다.

정일근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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