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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12> 통닭의 추억, 삼성통닭 대표 손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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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12> 통닭의 추억, 삼성통닭 대표 손영순

입력
2010.07.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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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긴 닭요리를 우리는 언제가 부터 ‘후라이드 치킨(fried chicken)’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치킨이라는 말이 흔해지면서 슬며시 자취를 감춘 단어는 다름 아닌 통닭이 아닐까. 내 어릴 적 추억 속에는 치킨이 아닌 통닭이 있었다. 아버지가 월급날이면 약주를 한 잔 하시고 오른손에 달랑달랑 들고 들어오시던 통닭 한 마리. 종이봉투에서 꺼낸 통닭은 재생지로 곱게 싸여 있었고, 모락모락 김이 오른 통닭 한 마리는 온 가족이 바라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부른 뿌듯한 별식이었다.

퇴근길 아버지 손에 들렸던 정다운 통닭

“우리 닭은 통으로 포장 해 가셔야 맛있어요.” 30년이 넘는 세월, 한결같은 맛의 통닭을 요리 해 온 삼성통닭(02-904-8053) 손영순 대표의 말이다. 1977년 7월1일에 창업을 했으니 나이로는 같은 자리에서 35년을 맞은 통닭집이다. 시작은 생계형으로 동네의 작은 모퉁이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에는 메뉴가 통닭 한 가지였고, 그 중에 대 중 소로 나누어 팔았어요.”

‘소(小)’자 통닭 한 마리에 750원, 대자는 900원이었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 손 대표는 당시 손님들은 깎아달라는 분도 많았다고 이야기하며 웃는다.

“닭 큰 거 드려요, 작은 거 드려요? 하다가 깎아달라고 하면 정찰제가 아니었던 시절이니까 깎아도 주고 그랬지요. 그때는 통닭, 소금, 집에서 담근 무 딱 이렇게 세 가지를 싸 줬어요.”

당시 일곱 평 매장에 테이블 세 개를 놓고 하루 매출은 30마리, 통행금지가 해지되는 단 하루, 크리스마스에는 100마리까지 팔기도 했다.

“그 때는 소금 뿌려 튀기기만 해도 맛있었어요. 가마솥에서 튀겼는데 그렇게 맛이 좋았어.”

70년대 80년대에는 아빠가 통닭 사오는 날만 기다리던 꼬마들이 90년대에 들어 사회인이 되었을 때, ‘치킨’이라 부르는 조각 닭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IMF 사태’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오던 동네 통닭집 삼성통닭도 위기를 맞았다. 생활이 급격히 어려워져서 세상을 등질까 생각도 해 봤다는 손 대표는 그런 와중에도 통닭의 맛이 변하거나 재료를 아끼는 등의 편법은 단 한 번도 꾀해보지 않았다 말한다.

“지금도 닭은 꼭 브랜드 닭을 써요. 재료 단가가 비싸기는 하지만 닭이 최상급이어야 이 맛이 나니까 어쩔 수 없어요.” 육질이 쫀득하고 살결이 깨끗한 통닭을 먹어보니 손 대표가 어떤 맛을 지향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국민간식이 웰빙 먹거리로

“나는 좀 미련해요.”라는 말은 몇 십 년을 한 우물만 파온 음식 장인들에게 꼭 듣게 되는 말이다. 미련해서 재료 아낄 줄 모르고, 미련해서 돈 남기기 어설프고, 미련해서 나보다 남 입에 들어가는 것을 더 신경 쓰고, 미련해서 더 싸게 공급하겠다는 재료상이 나타나도 단골 상점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미련함’은 한 길 인생을 걷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인 셈이기도 한 것이다. 음식 장인들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딱 맞는 후계자가 있다는 것인데, 손 대표의 아들 김종현씨가 열심히 모친의 통닭 비법을 전수 중이다. 모자가 힘을 합친 후 삼성통닭은 날개를 단 듯 사업이 안정되고 있다. 그동안 손 대표의 통닭 맛에 반해 자주 드나들던 단골들의 요청에 못 이겨 체인점 사업도 시작했다. “우리 체인점 사장님들이 다 우리 통닭 맛의 팬들이셨어요. 그러니까 의리 고객들이 또 다시 의리 고객을 만드는 체인점 형식이 된 것이지요.”라고, 손 대표 곁에 듬직하게 앉은 아들은 말한다. “같은 골목에 아무리 브랜드 치킨집이 생겨도 어머니는 꿈쩍도 않으시고, 유행 따라 이것저것 해보자 해도 묵묵히 하던 대로나 잘하라 하신답니다.”

좁다란 골목 초입에 삼성통닭이 있고, 닭이 불티나게 꾸준히 팔리다 보니 주변에 프랜차이즈 치킨집들이 옹기종기 모여들 법도 하다.

“다 같이 먹고 살아야지요. 어떤 날은 치킨이 먹고 싶고, 어떤 날은 통째 튀긴 우리 닭이 먹고 싶고 그런 것 아닌가?” 라고, 전남 장성 출신의 손 대표는 남도 인심을 그대로 담아서 말한다. 지난 월드컵 기간에는 하루에 800여 마리까지 닭을 튀겼다는데, 동이 트면서부터 튀긴 400마리의 닭이 아침 문 열자마자 빠져나가고 다시 번호표를 든 대기 손님들이 건물 끝까지 이어져 138명이나 기다리고 있는데, 닭을 튀기는 솥을 갑자기 한 두 대 더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손은 달리고 했단다.

“처음으로 닭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대표의 말이다. 내가 좋아서 24시간 생야채로 브랜드 닭을 숙성시키고 절대 비법을 따라 재료를 아끼지 않고 닭을 튀겨 왔지만, 이런 날에는 내 손으로 만들어 낸 맛이 내 상전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현재 삼성통닭은 35년 만에 상호를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흔한 이름이라 수유동 본점과 상관없이 ‘삼성통닭’이라 상호를 붙이는 집들이 생겨서 그렇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브랜드 화를 위한 상표 등록을 앞두고 앞으로 50년, 100년을 너끈히 이끌어갈 이름을 찾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삼성통닭은 직영점을 포함, 27개의 업장이 생겼지만 아직 강남에는 매장이 한 군데도 없다.

“통닭은 수입산이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통닭은 조각내지 않고 손님상에 낸다는 것이 신용이지요.” 통째 좋은 기름에 튀긴 닭을 손으로 결 따라 찢어 먹는 맛은 최고다. 고단백 저칼로리 영양식으로 21세기에 새롭게 환영 받는 닭으로 만들어 낸 통닭은 여전히 온 가족의 뿌듯한 별식인 것이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atgamsa@gmail.com

사진=임우석 imwoo528@gmail.com

■ 삼성통닭 손 대표의 좋은 닭 고르는 비법

삼성통닭 손영순 대표가 말하는 좋은 닭 고르는 법은 간단하다.

1. 닭의 살결이 불그스름하게 형색이 돈다.

2. 눌러봤을 때 탱탱하고 탄력이 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이나 닭이나 다 매한가지, 형색이 돌고 살결에 탄력이 있으면 건강하다는 증거다.

남도 출신의 손 대표는 매일같이 닭을 만지지만 영업시간 외에도 닭을 즐겨먹는다고. 간장 양념에 찜을 하거나 구워서 먹는 닭을 반찬으로 해서 온 가족이 뚝딱 밥공기를 비운단다.

손 맛 좋기로 단골들에게 유명해서 다른 메뉴는 왜 추가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는데, 육식 좋아하는 본인이 매일 먹어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닭을 주재료로 선택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한 일인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실제로 닭은 수분, 단백질, 지방 순으로 영양소를 갖고 있어서 에너지원이나 근육 형성에 도움이 되는 단백질은 필요로 하되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걱정하는 이들이 선호하는 식재료다. ‘몸짱’으로 소문난 유명인들의 단골 메뉴에도 닭은 빠지는 일이 없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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