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는 끝났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는 그대로 남았다. 우선 이 시험을 일제고사라고 비판하며 거부하거나 응시하지 말도록 유도한 교사, 결시자에 관해 허위 보고한 교장 등에 관한 징계ㆍ처리가 골치 아픈 현안으로 부각됐다. 한국교총은 시험을 집단 거부한 학교의 전교조 교사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엄중 처리를 촉구하고 나섰지만, 전교조나 일부 교육감들의 생각은 당연히 다르다.
평가 거부는 잘못된 행태
6ㆍ2선거로 지방권력이 교체된 이후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일반 행정 차원에서는 전임 지자체장이 벌여 놓은 일에 대한 부정과 비리 캐기로 혼란과 갈등이 심하다. 교육에서는 학업성취도평가를 둘러싼 대립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다. 앞으로도 많은 분야에서 파열ㆍ분열음이 빚어질 것이다.
많은 갈등 중에서도 교육분야의 갈등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교육이 국가장래에 관한 중요한 일이며 교육철학이나 이념의 차이로 인한 피해자가 무고한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어른들은 시험을 꼭 봐야 되는지 안 봐도 되는지 학생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학생들을 동원ㆍ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험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이다. 문자 그대로 학생들의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법적 근거를 갖춰 실시되는 시험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근본 취지는 평가를 통해 얻어진 통계를 토대로 학력 미달 학생ㆍ학교를 체계적으로 지원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자율성과 인격을 무시하는 ‘일제고사’로 폄하되거나 ‘성적 지상주의를 지향하는 줄 세우기 시험’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문제다. 어떤 일이든‘일제’라는 말이 들어가서 좋은 것은 별로 없다.
이 시험의 반대자들은 ‘교육은 경쟁이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만들어 흔들고 있다. 경쟁을 가르치는 게 교육은 아니겠지만, 교육이 경쟁이 아니라고 단언하는 것은 잘못이거나 단견이다. 교육은 교수-학습과 평가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평가에는 당연히 경쟁이 수반된다. 평가는 공정한 경쟁과 학력 상승 유도에 기여하도록 작용하는, 교육의 한 과정이다.
미국의 경우 이런 시험이 매년 실시되고 있으나 갈등과 말썽은 없다. 시험 당일의 결석자는 의사의 진단서가 있어야 결석을 인정 받으며, 미응시자들에게는 따로 날짜를 정해 시험을 치르게 하고 있다. 학교별 학군별 주별 성적은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교원노조는 우리나라만큼 힘이 세지만 학생들의 응시 문제로 논란을 벌인 적은 없다. 평가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우리의 경우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년에도 똑같은 현상이 빚어질 것이다.
시험의 의의와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을 대전제로, 교육과학기술부와 시ㆍ도 교육감들이 서둘러 개선책을 협의해야 한다. 우선 시험을 매년 실시하기보다 2,3년 주기로 조정하는 게 좋겠다. 교사들은 어느 지역 어느 학교의 성적이 어떤지 대략 다 알고 있는데, 평가결과가 비슷한 시험을 매년 실시하느라 홍역을 치르고 돈은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선책 서둘러 마련하길
해당 학년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르게 할 게 아니라 표집평가를 하자는 의견도 있다. 이 경우 어떻게 표본 대상을 추출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추려 시험을 치르게 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아울러 학업성취도평가에 대비한 문제풀이 식 수업을 하지 못하게 관리해야 한다. 이 시험이 비교육적 부작용을 빚고 사교육을 조장한다고 비난 받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교과부 장관이 곧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인지 다른 교육문제의 해결에도 진전이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실무자들로서는 전문가의 본분에 맞게 할 일을 계속해야 한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문제는 학생들과 직결된 것인 만큼 협의를 통해 갈등을 풀어가는 수범사례를 확립할 것을 기대한다.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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