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이제 이 속담을 '여름감기는 사람만 걸린다'로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빵빵한' 냉방 탓에 계절 질환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여름에 증상이 완화되는 대표적인 겨울철 질환으로 꼽히는 전립선비대증도 관리를 잘못하면 여름철에 더 심해질 수 있다.
감기약ㆍ지나친 냉방 조심을
전립선비대증은 겨울철에 증상이 심해지는 대표적인 남성질환이다. 여름에는 소변량이 줄어들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요도 괄약근 자극이 완화돼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여름이라고 방심했다가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 수 있다.
냉방이 일반화하면서 여름감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 때문에 먹은 종합감기약 한 알이 화근이 될 수 있다. 감기약에 들어 있는 항히스타민제와 에페드린 성분이 방광과 요도 근육을 수축시켜 소변이 나오는 길(요도)을 좁히기 때문이다. 유탁근 을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감기약뿐 아니라 신경정신과 약도 방광의 힘을 빼 배뇨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고, 수면제 중 일부도 전립선비대증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약을 먹기 전에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해 안전한 처방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나친 냉방도 전립선 건강에 해가 된다. 평소에 소변줄이 신통치 않거나 소변을 보고 나서도 시원하지 않으면 장시간 찬바람을 맞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몸이 차면 소변량이 많아지고, 전립선의 요도 괄약근이 자극돼 오줌을 잘 눌 수 없기 때문이다.
시원한 맥주 한 잔도 '독'이 될 수도
여름에 마시는 음료수나 술도 전립선비대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콜라와 커피 등 카페인 음료와 맥주는 한 번에 많은 양의 소변을 만들어 일시적으로 이뇨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밤에 맥주를 많이 마시면 전립선이 수축됨과 동시에 방광이 심하게 팽창돼 다음날 아침 소변 보는 데 아주 힘들 수 있다. 부득이 술자리에 참석하게 된다면, 술을 마시는 동안 소변을 자주 봐 다음날 아침 소변이 농축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여름철 멋진 몸매를 만들려고 하는 웨이트트레이닝도 전립선에는 독이다. 골반 내부 압력을 높여 울혈성 긴장을 일으키면서 전립선을 악화시킬 수 있다. 손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려면 골반 쪽에 그만큼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심한 운동 후에 하복부에 불쾌감이 느껴지거나 배뇨에 문제가 생긴다면 운동량이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전립선과 주변 조직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으므로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저녁 이후엔 물 적게 마셔야
전립선비대증은 진행속도가 느리다. 전립선이 커지기 시작하면 소변 줄기가 약해지고 배뇨시간이 길어진다. 전립선이 좀 더 커지면 오줌을 눈 뒤에도 개운치 않고 자다가도 2~3번씩 일어나 소변을 보는 등 더욱 심각한 배뇨장애가 나타난다. 회음부가 불쾌하고 하복부가 당기며 발기부전이나 조루증 등 성기능 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를 방치하면 결국 방광의 소변이 콩팥으로 역류해 콩팥 기능이 상할 수 있다. 특히 여름에는 땀으로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면서 소변이 농축돼 방광에 돌이 생기는 방광결석의 발병 위험도 높다.
초기에는 간단한 생활 요법만으로도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우선 전립선에 해로운 기름진 음식이나 고기 등 고칼로리 식품을 안주 삼아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형래 강동경희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저녁 7시 이후 수분 섭취량을 제한해 배뇨량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며 "아침저녁으로 온수로 20분씩 좌욕하고 과음을 피하며, 일하는 중간에 수시로 자리에서 일어나 맨손체조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소변 볼 때 중간중간 끊어주는 것도 전립선을 강화하는 데 좋다. 배뇨 후 방울방울 떨어지는 소변은 힘을 줘 배출하지 말고 요도 전체를 눌러서 짜내는 것이 좋다.
약물로는 전립선 크기를 줄이는 5-알파 환원 효소 억제제나 전립선과 방광경부의 근육을 부드럽게 만들어 소변이 잘 나오게 도와주는 알파 수용성 차단제를 사용한다. 5-알파 환원 효소 억제제는 전립선이 큰 사람에게 효과가 있지만 발기부전, 성욕감퇴, 사정장애, 여성형 유방증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알파 수용성 차단제는 배뇨장애를 개선하는 효과가 크지만 혈압이 떨어져 두통, 현기증이 생길 수 있다. 이현무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급성 요폐를 비롯해 요로감염, 혈뇨, 방광결석 등 합병증이 생겼거나 약물이 잘 듣지 않는다면 내시경 시술이나 일반 수술로 비대한 전립선 조직을 깎거나 도려내는 수술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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