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5시 20분의 격돌이 재점화됐다. MBC 파업과 SBS의 월드컵 올인, KBS 파업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꽤 오랫동안 물밑으로 가라앉았던 3자 경쟁이다. 리모콘을 쥐고 주말 저녁의 삼분지계(三分之計)를 만끽할 기회를 빼앗겼던 시청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 그러나 대체인력을 투입해 제작한 KBS의 예능 프로그램이 '무늬만 정상'인 실정이라, 방송3사의 본격적인 대결까진 시간이 좀 더 걸릴 전망이다.
1인자와 2인자의 정면대결
가장 흥미로운 대결 구도는 MBC '무한도전'의 1인자 유재석과 2인자 박명수의 맞장이다. 둘은 토요일 저녁 사이좋게(?) 뭉쳤다가 일요일 저녁 SBS '일요일이 좋다'의 '런닝맨' 코너(유재석)와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뜨거운 형제들' 코너(박명수)로 갈라서게 됐다. '런닝맨'의 첫방송이 나간 11일 '일요일이 좋다'는 10.7%의 순조로운 시청률(AGB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을 보이며 유재석의 힘을 증명했다. 같은 시간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8.7%를 기록했다.
'런닝맨'은 이효리 김종국 등 '패밀리가 떴다'의 패밀리가 출연해 예의 팀워크와 명불허전의 예능 감각을 뽐냈다. 시청자 전다은씨는 프로그램 게시판에 "원래 첫회는 감을 못 잡고 흐름이 이상하기 마련인데, 그런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계속 '빵빵 터졌다'"는 시청소감을 남겼다. 버라이어티쇼의 무대를 시골에서 도심으로 옮긴 것도 신선하다는 평. 그러나 표절 논란에 휩싸인 이효리의 출연 등을 두고 벌써부터 잡음도 나오고 있다.
박명수의 '뜨거운 형제들' 코너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당분간 더 달아오르며 예능 대결의 흥미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비호감에 가까웠던, 메이저와 마이너의 중간에 어정쩡하게 위치했던 출연자들도 나름의 예능 캐릭터로 존재감을 갖춰가고 있다. 그러나 기혼 출연자들이 미혼 출연자를 대리로 내세우는 아바타 소개팅에만 의존하는 경향은 이 프로그램이 넘어서야 할 벽이 될 듯하다.
웅크린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
'예능 황제'로 군림하던 강호동은 KBS의 파업 여파로 당분간 불리한 싸움을 하게 됐다. KBS는 파업에 참여한 2TV '해피선데이' 제작팀에 대체 인력을 투입해 11일 강호동이 출연하는 '1박 2일' 코너도 정상적으로 방송했다. 그러나 기존 PD가 찍은 프로그램을 대체 인력이 편집한 결과물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싸늘했다. 시청자 게시판엔 "평소보다 늘어지는 느낌이다" "웃음의 포인트를 짚어내지 못했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30%를 오르내리던 시청률은 11일 방송에서 18.4%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이런 하향세는 강호동의 탓이 아닌 만큼, '강호동 천하'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예능 프로그램 중 '1박 2일'은 시청층이 가장 넓고 충성도도 높다. 시골로의 여행이라는 소재의 보편성에다 예측을 허락하지 않는 생동감 넘치는 전개, 짝을 이룬 '남자의 자격' 코너의 인기 등 덕분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1위를 지킨 제작진의 피로감 혹은 시청자의 권태감, 일부 출연자의 병역기피설 등 잡음이 하나 둘 불거져 나온다.
일요일 예능 왕자의 자리는, 바야흐로 쟁탈의 대상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