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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선생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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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선생님, 선생님

입력
2010.07.1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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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스승의 날이 돌아왔고, 아이의 담임교사에게 뭔가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벌써 십 몇 년 전의 얘기다. 초보 학부모였던 나는 그런 경우 가장 자연스럽게 성의를 표시하는 방법을 선배 학부모들에게서 배웠다. 책 사이에 봉투를 끼워 선물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차마 내 책에 봉투를 끼워 넣을 수는 없어서 수필집 하나를 사서 그 안에 봉투를 넣었다. 그날 저녁 아이의 담임교사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고맙다는 말은커녕, 누구 어머니까지 그러실 줄은 몰랐어요, 라는 책망의 전화였다.

촌지 봉투 나무란 선생님

당시 아이의 담임교사가 왜 내게 '당신마저...' 라는 말을 썼는지는 모르겠다. 별로 잘 나가지도 않는 내가 소설가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을까. 그렇다면 소설가란 마땅히 보편적인 수준을 넘어 좀 더 윤리적이거나 양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보다는 아마도 본인이 내 아이를 각별히 예뻐했던 탓일 것이다. 미욱한 구석이 많아 각별히 챙겼을 수도 있고, 어미의 심정으로만 말하자면, 뭔가 예쁜 구석이 있어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선생님에게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고마웠던 기억도 있다. 그 선생님은 내 아이에게는 분명히 고마운 선생님이었고, 그래서 아마 더 '성의를 표하고' 싶었을 것이다. 적절한 선물을 고를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그걸 고민하는 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어떤 것은 넘치고 어떤 것은 너무 부족하게 여겨졌다. 그때 책 속의 봉투라는 방법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내 경험을 얘기하는 것이 너무 오래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훨씬 더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보다도 더 먼 이야기다. 그러니까 내가 어렸을 때, 1970년대 초반의 일이다. 학부형이 소집되는 날이 다가올 때마다 집안이 우환으로 가득 찼다. 부끄러움으로 가득 차서 간신히 마련한 봉투를 내미는 엄마와 그 봉투의 두께를 손끝으로 벌써 알아차리고 책상 한 쪽으로 탁 던져버리는 선생님... 자식들에게 자신이 당한 수모를 얘기하는 엄마들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 알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커서 엄마가 되었을 때, 또다시 봉투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엄마만 되고 아빠만 된 게 아니라 선생님도 되었겠다. 선생님의 앞에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는 존경이다. 존경하는 선생님이라는 말이 너무 식상하게 들린다면 존경할 만한 선생님이라는 표현은 그나마 그럴 듯하다. 여전히 그 두 단어는 어울린다. 존경 받아야 마땅할 사람이 선생님이어야 한다는 뜻이겠다.

학교 비리 얘기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 급식업체에서도 받아먹고, 학생들 수학여행갈 때는 학생들을 머리수로 계산해서도 받아먹었다고 한다. 선생님들께 감히 '받아먹는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잠시 머뭇거리게 되는 것은 내가 아직도 구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도 사람이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할 여지는 없다. 그런데 이 말이 묘하다. 사람은 누구나 부정하고 나쁘다는 뜻을 내포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한테 배우고, 그 다음에는 학교에서 배운다. 지식을 배우기 전에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 그들이 최초로 속하게 된 하나의 사회이다.

'존경 받아 마땅할 선생님'

학교가 아이들에게 환상을 품어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유치원의 선생님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되었단다'라는 식의 동화를 읽어주고, 또 매일 권선징악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같이 학교가 그렇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것은 있겠다. 사람이라도 누구나 부정하고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정도, 그래도 내가 선생인데... 라는 생각 정도를 바란다면 그것이 과욕이겠는가.

이 글을 쓰면서 그래도 그런 불미한 소식들에 가장 마음이 상하는 것은 여전히 '존경 받아 마땅할 선생님'들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여전히 내가 구세대인가.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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