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힘들어 죽겠다"고 곡소리를 내던 일부 영화인들도 한시름 놓게 됐다. 월드컵이 개막하기 전부터 충무로는 잔뜩 긴장했다. 많은 작품이 개봉 시기를 놓고 갈팡질팡했다. 2002년부터 월드컵이 열렸다 하면 암흑의 시기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극장가는 아예 월드컵 경기를 3D로 중계하며 관객들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역시나 '검은 6월'이었다. 축구 영화 '맨발의 꿈'과 115억원짜리 전쟁 영화 '포화 속으로'가 선전을 다짐하며 나섰지만 씁쓸한 흥행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상반기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1,063만7,194명이 극장을 찾았다. 5월(1,334만8,519명)보다 270만명가량이 줄었고, 지난해 6월(1,308만9,386명)보다 240만명이 감소했다. 축구에 시큰둥한 미국에서 월드컵 준결승전 시청률이 2006년보다 36% 이상 뛰었다는 보도(시사주간 타임)가 있을 정도니 어디 충무로라고 월드컵 무풍지대가 될 수 있겠는가.
월드컵이 끝나면서 여름 시장도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다. 그러나 정작 여름 극장가를 찾을 한국영화는 '이끼'와 '악마를 보았다'를 제외하면 무게감이 떨어진다. 원빈 주연의 '아저씨'와 공포스릴러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유지태와 수애 주연의 '심야의 FM', '마음이2' 등도 출사표를 내지만 기대작이라 부르기에 조금은 왜소해 보인다.
여름은 최근 몇 년 사이 명절과 연말 대목을 제치고 한 해 중 가장 큰 시장으로 부상했고 덩치 큰 한국영화들이 여름사냥에 나서왔다. 2006년 '괴물'과 '한반도', 2007년 '화려한 휴가'와 '디워',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지난해 '해운대'와 '국가대표' 등이 제작비 100억원 내외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자임하며 여름에 개봉했다.
올해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강우석, 김지운 감독이 각각 연출한 '이끼'와 '악마를 보았다'의 제작비는 70억원 언저리다. '이끼'는 당초 5월 개봉 예정이었다가 투자배급사가 무주공산이 된 여름시장용으로 부랴부랴 개봉시기를 늦췄다. 최근 2년간 불황 극복에만 정신이 쏠려 여름용 영화를 제때 준비하지 못한 국내 투자배급사들의 단견이 빚은 결과다.
월드컵이 끝났다지만 충무로가 과연 여름 흥행의 단물을 맛볼 수 있을까. '이끼' 등이 물량 공세가 아닌 완성도를 앞세워 흥행 홈런을 날릴 수 있을까. 올 여름 극장가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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