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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향우회 저녁모임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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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향우회 저녁모임 눈치

입력
2010.07.1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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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에 가득한 달빛이 마치 하얀 서리 같구나. 머리를 들어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고 머리를 숙여 고향생각에 잠긴다(床前明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明月 低頭思古鄕). 이백의 란 시다. 굳이 이태백의 시 구절을 꺼내지 않더라도 고향이란 말이 주는 의미야 새삼 논할 필요가 있으랴. 동양의 고향은 서양의 그것과는 달리 애틋하고 깊고 큰 울림을 지녔다.

고향 까마귀도 반기는 정서

인류학자나 사회학자들은 그 연원을 모빌리티, 이동성에서 찾기도 한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농경사회의 경우 이동성이 거의 없다. 한 동네에서 태어나 건너 마을 처자에게 장가가서 그 옆 어느 산골에서 살다가 고향 뒷산에 묻힌다. 서양처럼 말을 타고 초지를 따라 이동을 거듭해온 역사와는 애시당초 고향에 대한 정서가 다르다.

그래서 가장 불길한 새인 까마귀마저도 고향에서 날아오면 반갑다는 말까지 등장한다. 이러다 보니 향우회 등 고향을 매개로 한 다양한 모임들이 등장한다. 고향을 떠나온 한국인치고 지연을 매개로 한 모임, 향우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공무원 사회의 향우회는 일반인에 비해 좀 더 유난스럽다. 그 밑바닥을 살펴보면 일면 이해가 간다. 언론을 통해 발가벗겨진 영포목우회도 가입조건이 중앙부처 사무관 이상이다. 사무관이란 행정고시를 합격해 얻는 첫 번째 직급이고, 행시는 가난한 시골 청년에게 출세 길을 보장해 주는 등용문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정서를 공유한 사람들이 모인 향우회가 출향 인사들에게 편안한 자리가 되리라는 것쯤은 쉽게 짐작된다.

고향을 매개로 한 끈끈한 유대관계는 나라 밖에도 있다. 미국의 경우 주로 남부다. 베트남 전쟁에 투입돼 첫 전투에서 벌벌 떠는 톰 크루즈에게 고참이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조지아주 비너스라고 답하자 고참이 답한다. 고향이 그쪽인 사람은 다들 무사히 귀환하더라고. 고향을 들먹이며 신병을 안심시키는 선임병의 지혜가 돋보인다. 영화 의 한 장면이다.

그래서 땅콩 농장주 지미 카터가 대통령이 되자 조지아 사람들이 대거 백악관에 등장한다. 이른바 조지아 마피아다. 스티븐 포스터는 과 등 '남쪽나라 내 고향'을 노래했고 이들 지역의 국민가요로 불려진다. 포스터의 노래가 태평양 건너 우리 음악교과서에 실린 것도 따지고 보면 고향에 대한 노랫말이 우리 정서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이처럼 고향과 지연은 정착민 사회에서는 당연히 나타나는 독특한 사회현상이다.

그러나 선진국은 지연보다는 학연을 중심으로 한 연결고리가 대세다. 영국인들이 기를 쓰고 자녀를 이튼 스쿨과 옥스포드 케임브리지에 보내려고 하는 것이나, 미국인들이 하버드 예일 등 아이비리그 대학을 꿈꾸는 것은 이들 학교를 졸업할 경우 자연스레 얻게 되는 학연을 중시하는 데 기인한다. 이를'굿 올드보이 네트 워크(good old boy network)'라고 한다. 에릭 시걸의 소설 에서 주인공 올리버가 하버드 법대 진학을 강요 받는 것도 굿 올드보이 네트워크를 기대하는 부모의 바람이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

권력다툼에 엉뚱한 불똥

영포목우회를 둘러싼 권력 투쟁이 점입가경이다. 일부 언론은 회원수첩까지 구해 낱낱이 까발리고 있다. 최근 향우회 저녁 모임이 확 줄었다고 단골 밥집 사장이 귀띔한다. 성층권의 권력 다툼이 엉뚱하게 향우회로 불똥이 튀고 있는 형국이다. 출세를 했든 못했든, 지방 출신이 향우회를 꾸려 고향 소식을 나누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고향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영포 모임이 못마땅하다고 해서 향우회 저녁자리까지 눈치 봐야 하는 사회는 우리가 바라는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김동률 KDI 연구위원·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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