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니스가 벼랑 끝 위기에 놓여있다.
2008년 데이비스컵 월드그룹 16강까지 오른 한국 테니스가 불과 2년 만에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축구의 월드컵처럼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은 111년의 역사를 가진 대회로서 각 대륙별로 지역예선을 거쳐, 월드그룹 16강을 가려내, 토너먼트 방식으로 매년 말 최종 챔피언을 뽑는다. 한국은 1981년, 1987년, 2008년 세 차례 월드그룹 16강에 올랐다.
월드그룹 16강은 축구의 월드컵 16강에 해당한다. 한국은 1987년 이후 20년만인 2008년에 월드그룹 16강에 이름을 올렸으나 그때뿐이었다. 호주와 함께 아시아 대표주자로서 월드그룹에까지 오른 한국테니스가 2년 만에 지역예선 1그룹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쇠락한 것이다. 간판스타 이형택(34)이 은퇴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다.
한국테니스가 9~11일 경북 김천에서 열린 2010 데이비스컵 아시아- 오세아니아주 지역예선 1그룹 플레이오프 1회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2-3으로 졌다. 겉으론 2-3이지만 내용상으론 완패에 가깝다. 지난 3월 데이비스컵 지역예선1그룹 1회전에서 카자흐스탄에 0-5로 참패한 데 이어 잇달아 무너진 것이다. 한국은 이로써 9월17일 필리핀과 1그룹 잔류를 위한 플레이오프를 펼쳐야 하는 ‘참담한’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만약 여기에서도 패하면 2그룹으로 강등된다.
한국테니스가 붕괴된 가장 큰 이유로 체력저하를 꼽을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 내내 한국선수들은 헉헉댔다. 홈 코트의 이점을 안고, 시차에 적응해야 하는 핸디캡도 없는 한국선수들이 상대선수들보다 훨씬 지친 모습을 보였다. 대회 첫째 날과 둘째 날 단식 2게임과 복식 1게임에서 약속이나 한 듯 첫 세트는 따냈지만 2,3,4세트를 내줘 역전패 당한 것이다. 대표팀 김남훈(40ㆍ현대해상)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테니스의 모든 기량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는 문제는 알고 있었지만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해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답했다. 이형택 KBS N해설위원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경기를 하다 보면 체력이 늘겠지’ 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큰 착각”이라며 “기량향상에 4시간을 할애하면 체력훈련에 6시간을 투자해야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이형택 은퇴 이후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대표팀의 에이스는 김영준(30ㆍ260위·고양시청)과 임규태(29ㆍ278위·삼성증권)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젊은 피’로서 임용규(19ㆍ298위ㆍ명지대)와 왼손 잡이 김현준(23ㆍ805위ㆍ경산시청)이 힘을 보태고 있다. 20대 후반, 30대 초입의 선수들이 핵심전력인 셈이다. 이들은 특히 톱랭커들이 참가하는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대회보다는 등급이 낮은 퓨처스, 챌린지 대회에 출전하다 보니 랭킹점수가 낮다. 이에 반해 일본은 소에다 고(25ㆍ112위), 니시코리 케이(21ㆍ193위)등 신예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대만도 올 시즌 윔블던 8강에 오른 루옌순(27ㆍ42위)이라는 든든한 간판이 있다. 이들은 투어대회에 과감히 도전해, 부딪히면서 세계의 벽을 조금씩 허물고 있다. 테니스 전문가들도 “해외전지훈련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에 앞서 선수들의 도전정신이 우선돼야 한다는 이견도 있다. 이형택 해설위원은“작은 무대에 안주하는 생활로는 큰 열매를 맺을 수 없다”며 “자비를 들여서라도 세계무대에 도전장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새벽부터 저녁까지 테니스에 온몸을 던지겠다는 각오 없인 세계 톱랭커 진입은 그림의 떡이다”라고 말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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