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는 아름답다. 자신의 소유물을 아무 대가 없이 내놓는 일, 기부의 시작이고 끝이다. 맘만 먹으면 누구나, 언제나 할 수 있을 만큼 아파트 단지 귀퉁이에, 교회나 마을회관 앞에 기부함은 널려 있다. 그런데도 '이건 너무 보잘것없는 게 아닐까'하는 민망함에 망설이기도 한다.
기부함의 대표주자는 아름다운가게의 물품기증함이다. 2003년 10월 서울시내 아파트단지에 한둘 생겨나더니 현재는 전국 250여 곳에 있다. 매년 기부물품 50만~60만점을 모으는 거대창구로 성장했다. '아름답고 손쉬운' 기부를 내세운 만큼 함 속엔 상상하기 힘든 다양한 물품들이 많다고 한다. 함 속을 들여다봤다.
20명을 먹인 알 하나
2007년 어느 날 경기 평택시 안중면 지점(아름다운가게) 앞의 함엔 타조 알이 담겨있었다. 가게 단골이 친척이 운영하는 타조농장에서 직접 가져와 기부한 것이었다. 기부물품이 들어오면 가격을 정하고 파는 게 관례인 터라 아름다운가게 직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당시엔 타조 알 가격을 알 수가 없어서 "이게 무엇이 쓰는 물건인고"라는 분위기였다. 결국 타조 알은 며칠 후 인근의 어린이집으로 가 맛있는 '프라이'가 됐다. 자그마치 20여명이 나눠먹을 정도로 큰 타조 알이었다는 전설(?)만 전해질 뿐이다.
최근 서울의 한 함에선 메주 10여말이 발견됐다. 담당자가 함을 열자마자 퍼진 구수한 향내에 적잖이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에 사는 한 할머니가 직접 빚은 손메주였는데, 다행히 아주 싼 값(1만원 내외)에 하루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지난달에는 금니도 등장했다. 중년의 여성이 세 개의 금니를 흰색 천으로 곱게 싸 함에 넣어둔 것이다. 감정을 받아본 결과 아주 높은 순도의 양호한 이로 판정돼 며칠 후 8만원에 처분이 됐다.
이 밖에 옛 정취가 숨쉬는 곰방대 갓 짚신과 복조리 등 전통 물품도 빼놓을 수 없는 기증품이다. 지난달 서울 서초구 매장 앞 함에는 신라토기가 들어있었다. 아름다운가게 관계자는 "궁중의상이나 한복 등 전통 의상도 심심찮게 들어온다"고 귀띔했다.
음란물은 기부 No!
가끔은 물품기증함을 불순하게 사용하는 얌체족도 있다. 기르던 애완동물을 버리거나(?), 성인용품을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올 초에는 햄스터 두 마리가 서울의 한 매장 앞 함에서 발견됐다. 매장 관계자는 "검정 비닐봉지 안에 있어서 깜짝 놀랐다"며 "언젠가는 한밤 중에 강아지를 기부함에 몰래 넣으려던 아저씨를 말리느라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
불법 다운로드를 받은 영화와 음란물 CD, 성인용품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들 물품은 아름다운가게 매장을 통해 재판매가 불가능한데다, 재기부도 힘들어 대부분 폐기되고 있다. 매장 관계자는 "한 번은 외국의 성인용품 전문점에서나 파는 사탕으로 만든 속옷이 나왔는데, 처분이 곤란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기부물품 종류가 다양해진 만큼이나 전체적인 기부품의 양도 급격히 늘고 있다. 재판매하는 물품의 평균가격은 1,000~1,500원, 명품이라 불리는 고급 브랜드 제품의 가격은 15만~20만원인 아름다운가게 초기의 연 매출액은 1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자그마치 125억원을 달성했다. 이중 인건비와 운영비 등을 뺀 순수익 33억여원이 도움이 필요한 개인 5,300명과 단체 800여 곳에 후원금으로 전달됐다.
기부는 아름다울뿐더러 참 쉽다.
남상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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