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창환(65ㆍ사진)씨가 일곱 번째 시집 (문학과지성사 발행)를 냈다. 지난번 시집 (2004)에서 신성과 허무가 공존하는 생의 양면을 구도하듯 탐구했던 그는 이번 시집에서는 범속해 뵈는 일상에 고루 깃들어 있는 영성에 대한 깨달음을 보여준다.
'마드모아젤 양장점 앞을 십 년 넘게 지나다녔어도/ 쇼윈도 안의 마네킹 셋이 서로 흘끗거리는 건/ 오늘 아침 출근길에 처음 보았다'('마네킹'에서) 로트렉의 그림 속 무희, 마릴린 먼로, 바비 인형을 각각 닮은 마네킹들이 '입술 삐죽 내밀며' 서로 미모를 재는 걸 발견한 그날 밤, 시인은 자신의 '늙은 자동차'가 '너무 오래 쓸쓸한 어둠 속에 떨었노라고/ 암내 맡은 나귀처럼 툴툴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이같은 물활론적 상상력은 죽은 시인의 이모를 따라 '고양이 돌아오듯/ 다음 세상으로 살금살금' 건너가듯 말라죽어버린 이모집의 정원수('이모네 석류나무'), 절벽을 피해 산비탈 옹벽을 들이받고 작동을 멈췄다가 시인이 쓰다듬어주자 다시 움직이는 자동차('휘청')에도 들어있다. 낙산사와 숭례문 화재 사건을 타락한 중생에 절망한 관세음보살의 자살에 빗댄 시 '관세음과 숭례'는 그 상상력의 극치다.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담은 시편도 이번 시집에 여럿 실려 있다. 중병이 든 노인의 목에 나 있는, 인공호흡 조치의 흔적인 듯한 구멍에서 시인은 시를 긷는다. '구멍에서 흙비 냄새가 났다/ 오체투지, 때 묻은 생이 엎드려 있다// 온기가 몸을 떠나기란 이토록 어렵구나, 늙은이/ 목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긴 터널이 들여다보인다'('구멍'에서) 또 10편으로 구성된 '황야 일기' 연작은 조씨가 2005년 중앙아시아를 여행할 당시의 체험과 깨달음을 담은 작품이다. 다음달 숭실대 국문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는 그는 "최근 2~3년 간 매달려온 죽음에 대한 고민 등을 담아 내 삶의 한 매듭을 짓는 시집"이라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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