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감. 2010년 최고 유행어 가운데 하나일 듯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 정당 후보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런데 '진보적인' 교육감이 선출되었다니,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말은 정말 맞는가?
교육감 선거는 정당 공천을 배제한다. 물론 전교조 출신 교육감은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교수 출신 다른 교육감들이 정말 진보인지는 알 수 없다. 그들 모두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진보'는 아니다.
교육을 보는 단순한 이분법
정당 소속이 아닌 교육감들에게 '진보'라는 말이 따라다니니, 역설 아닌가? '개혁적'이라는 말이 차라리 오해가 없어 보이는데도, 굳이 이념 지향적인 '진보'라는 말이 사용되는 이유는 뭘까?
보수와 진보의 단순한 이분법이 과도하게 사회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교육정책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언론매체들조차 정부를 반대하는 쪽을 모두 진보로 묶어 버리는 경향에 빠져 있다. 민주당도 진보로 묶이니, 우습다. 보수는 '진보'를 비난하기 위해 그 이름을 이용하고, 보수가 아닌 사람들은 자기 최면과 착각에 빠져서 그 말을 남용한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으르렁거리지만, 사실은 공모하는 관계다.
다수 유권자가 진보적 교육을 지지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서울ㆍ경기ㆍ강원에서 이 교육감들이 얻은 표는 35~41%였는데, 그 비율은 진보정당이 아니라 제1 야당의 득표율과 비슷하다. 전체 득표율을 따지면 오히려 보수 쪽 교육감후보들이 더 많은 표를 얻었다. 반 이명박 쪽은 다만 후보를 통일한 덕택에 승리했다고 할 수 있다. '진보' 교육감들이 선출됐으니, '진보적인' 교육정책을 쓰면 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보수/진보의 단순한 이념이 과도하게 개입할수록 교육 갈등은 해결하기 더 어려워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교장과 이사장이 개입된 부패를 털어 버리는 일은 가장 긴급한 교육개혁인데, 여기서 보수와 진보를 구별할 일은 전혀 없다. 다른 쟁점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제고사와 교원평가에 찬성하면 보수고, 반대하면 진보인가? 아니다.
물론 나는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를 치르고 그 결과에 따라 학교를 평가하는 방식에는 반대한다. 그렇지만 학생들 학력을 평가하기 위한 표본조사 수준의 시험은 치를 수 있다고 본다. 개혁적인 교육감들도 그 방향에서 학력평가에 접근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 정도면 상식적인 부모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
교원평가도 학생과 학부모의 참여가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교과부가 내세우는 교원평가 방식은 학생과 학부모의 실질적인 참여를 제한한다. 그런 교원평가는 하나마나다. 과거에 전교조도 교원평가에 대해 다소 경직된 태도를 보였지만, 지금은 다를 것이다. 여기서도 핵심은 교과부 혹은 교사나 교장의 이익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다.
학생인권조례도 마찬가지다. 공연히 보수와 진보의 싸움으로 만들지 말자.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권리이다. 두발을 규제하는 교사들의 폭언과 폭력을 막는 일은 상식적인 일이다. '열공'하지 않는 학생들도 폭력적 차별 없이 학교를 다닐 권리가 있다. 일부 예민한 문제는 더 논의해야겠지만, 기본적인 인권문제는 보통 학부모가 기꺼이 동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다. 학생인권에 반대하는 자는 보수가 아니라 수구꼴통일 뿐이다.
다수 부모들의 걱정 알아야
개혁 교육감들은 이명박 정부의 편향된 교육정책에 브레이크를 걸고 부분적으로 제도를 개선할 권한을 얻었다. 분명 희망이다. 그러나 교육감들의 득표율을 생각해보자. 가까스로 최악을 막을 수준이다. 아찔한 균형이다. 다수 부모들은 말로만 근사한 진보에 대해 의심이 많고 불안한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합리적으로 조절하지 못하는 한, 각 가정은 각개전투를 계속할 듯하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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