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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대한민국이 갈라진다] <1부> (5.끝) 당연한 듯 기술·인력 빼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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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대한민국이 갈라진다] <1부> (5.끝) 당연한 듯 기술·인력 빼가기

입력
2010.07.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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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독점 제공" 무리한 요구 거부하니 개발 인력에 손 뻗어

#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A사장은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창업 멤버로 합류해 8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회사를 키운 개발실장과 핵심 개발자 2명이 난데없는 고민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B사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은 것이다.

이 업체는 멀티미디어 분야에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기술을 인정받아 해외 여러 나라에서 이 업체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휴대폰, MP3, 내비게이션 등 이동기기에 탑재하는 기술이 탁월하다. 디지털 휴대기기 개발에 적극적인 대기업은 A사장에게 독점 제공을 요구했고 이를 거절하자 개발자 빼가기에 나선 것이다. K사장은 "임원인 개발실장과 핵심 개발자들이 빠져나가면 사실상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며 "이들에게 대기업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없어 속이 탄다"고 하소연했다.

# 또 다른 벤처업체의 C사장도 최근 같은 경험을 했다. 휴대기기에 탑재할 소프트웨어 개발을 논의하기 위해 대기업 B사와 만남을 가진 뒤 동석했던 개발자가 영입 제의를 받은 것이다. C사장은 "최근 이 대기업이 관련 분야의 개발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력을 대거 영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런 식의 인력 영입은 대기업이 주장하는 상생과 거리가 멀고 중소기업을 무너뜨리는 짓"이라고 분개했다.

기술 제공 강요 금지법 26일 시행

기술 하나로 버티는 벤처나 중소기업들이 호소하는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가 바로 대기업의 기술 빼앗기다. 양태도 다양하다. 핵심 기술을 개발한 인력 빼가기부터 납품 계약이나 거래 관계 유지를 빌미로 대놓고 기술을 요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객 관리를 이유로 중소업체에 기술 자료나 특허 공유를 요구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기술을 넘겨받아 생산하거나 다른 업체에 제공해 더 낮은 가격으로 납품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금지하는 기술자료 제공강요 금지 규정을 하도급법에 신설, 26일부터 시행한다.

특히 시스템 통합(SI) 업계에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SI 분야는 대기업이 정부 전산 관련 사업을 수주하면 수 많은 하청업체들이 장비 납품 및 소프트웨어 개발을 나눠 맡게 된다. 마치 건설사업과 비슷하다. 그렇다 보니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을 맡은 중소업체들이 대기업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면서 기술 유출 관련 특허 분쟁에 곧잘 휘말린다.

올해 3월에도 보안시스템 개발업체인 D사가 대형 SI업체 S사를 상대로 특허기술을 가로챘다는 이유로 소송을 벌였다. D사에 따르면 특수 장치로 출입문을 안전하게 여닫을 수 있는 특허기술을 개발했으나 S사가 정부 공사 참여를 이유로 관련 자료를 요구한 뒤 특허기술을 약간 고쳐 수주에 성공했다.

직원 10명의 소규모 벤처인 E사도 2008년 또 다른 SI 대기업인 S사가 지방자치단체의 유비쿼터스 시스템 도입 사업에 하청업체로 참여해 프로젝트 설계를 맡았으나 결국 기술과 사업 아이디어만 빼앗기고 배제되는 결과를 당했다. E사 사장은 "회사가 영세해 법적 절차를 밟고 싶어도 쉽지 않다"며 속을 끓였다.

특허 심판원에 따르면 이처럼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 벌어지는 기술분쟁 때문에 발생하는 특허심판 건수가 2006년 202건, 2007년 233건, 2008년 262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 승소율도 2006년 51.5%에서 2008년 55.5%로 증가해 대기업의 특허 침해가 적지 않다는 점을 입증했다.

제품까지 강매

기술 도용뿐 아니라 대기업이 중소업체에 강제로 제품을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제품을 강매하는 것이다.

지난달 말 통신장비업체인 G사는 거래 관계인 대기업으로부터 어이없는 통보를 받았다. 최신 스마트폰을 대거 구입할 경우 거래 관계에 특별 대우를 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G사 관계자는 "특별 대우란 납품업체 선정시 우선 고려하거나 납품가격을 후하게 쳐줄 수 있다는 뜻으로 보였다"며 "마치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 같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계약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해당 대기업과 거래 관계인 H사도 같은 통보를 받고 고민 끝에 직원들의 휴대폰을 바꿔주기로 결정했다. G사 관계자는 "약정 기간 등에 얽매여 휴대폰을 바꿀 수 없는 직원들도 있어서 불만이 많았지만 거래 관계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기술 도용이나 제품을 떠넘기는 대기업에 맞설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현실이다. 법적 소송에 들어갈 경우 적지 않은 비용도 부담이고, 법적 절차에 매달리면 기술 개발을 하지 못하는 등 이중 피해를 보게 된다. 여기에 거래 관계마저 끊겨 당장 생계를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08년에 중소기업들이 개발한 기술을 정부에 맡겨 놓고 분쟁시 활용하는 제도인 기술임치 제도를 도입했으나 대기업 그늘에 있는 중소기업들로서는 이를 적극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업체 관계자는 "제도와 법이 없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실제 법과 제도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 지 현장을 살펴보고 중소업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정부의 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 '휴대폰 알림' 특허 소송 이긴 김성수 서오텔레콤 사장

"남은 거요? 빚하고 말라버린 눈물뿐 입니다."

예상과는 달랐다. 7년이란 긴 시간 동안 달려 온 마라톤 특허 분쟁이 서서히 결승점에 다다르고 있었지만 기쁨과 환희 보단 괴로움이 더 커 보였다. 중소기업이 대기업하고 맞붙어선 승산이 없다는 통념을 홀로 나서 깨뜨렸지만 상처뿐인 영광에 불과했다.

9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김성수(58) 서오텔레콤 사장의 얼굴은 그렇게 일그러져 있었다. "회사와 가족만 만신창이로 만들었습니다."

가시밭길 같던 그의 투쟁기는 9년전, 예기지 못한 불의의 사건에서 시작됐다. 당시 흉악범에게 조카 딸을 잃은 사고를 계기로 그는 휴대폰 알림 서비스(이동통신망을 이용한 비상호출처리장치ㆍ2001년9월 특허출원)를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서비스는 응급상황 발생 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즉시 지정된 수신자에게 응급 구조 메시지가 전달되는 기술. 2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한 이 기술을 상품화하기 위해 대기업인 L사에 관련 서류를 건네면서 상담을 했지만 L사는 너무 앞선 기술이라며 기다리자는 의견을 보내왔다. 하지만 얼마 후,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이 터지자 L사서 김 사장의 기술과 유사한 통신서비스를 탑재한 휴대폰을 슬그머니 내놓았다.

"울화통이 치밀었죠. 누가 봐도, 우리가 개발했던 기술과 비슷했으니까요." 김 사장은 갖고 온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서오텔레콤에서 개발한 휴대폰 알림 서비스와 L사의 휴대폰을 자세하게 비교해 놓은 PDF 파일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게 2004년부터 시작된 L사와 벌인 법정 특허 분쟁은 2007년 대법원이 서오텔레콤의 손을 들어 줄 때까지 계속됐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지루한 법정 공방이 계속되는 동안, 김 사장이 입은 피해는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막대한 소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에 있던 5층 사옥(40억원 상당)은 팔아야 했고, 어렵게 성사시켰던 해외 수출 건도 국내 대기업과의 법정 분쟁을 이유로 하나 둘씩 계약 파기를 알려왔다. 경영이 어려워지자 핵심 연구원들도 회사를 떠나, 대부분 중국 휴대폰 업체로 흘러갔다. "유능한 인재들이 자리를 못 잡고 경쟁국인 중국에 빼앗긴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국가적으로도 손해잖아요." 한숨으로 인터뷰를 시작한 김 사장은 연신 탄식을 쏟아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입힌 정신적 피해를 견디기 어려웠다. "현재 군복무 중인 아들 놈은 '아빠처럼 고생하며 엔지니어로 살기 싫다'며 이공계로 가려고 했던 대학 진로도 문과로 바꿨습니다. 아버지로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죠." 그는 천정으로 시선을 돌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법원의 판결로 명예는 지켰지만 남은 건 빈 껍데기였다. 김 사장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따른 갑상선 암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다.

얻은 게 있다면, 기술력만 있으면 중소기업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조금 알렸을 뿐이란다. 서오텔레콤의 휴대폰 알림 서비스는 현재 애플과 모토로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특허 협상을 요청해 오고 있다.

현재 김 사장은 L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잃어버린 자신감을 어떻게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처진 어깨로 뒤돌아서는 김 사장의 모습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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