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비숍 등 지음ㆍ안진환 옮김/사월의책 발행ㆍ504쪽ㆍ1만8,000원
2008년 전세계를 덮친 금융위기로 자본주의는 휘청거리고 있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승리감에 취한 재 20년 이상 사상 유례 없는 황금시대를 누린 자본주의에 경고음이 켜진 것이다. 온갖 병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 책 는 기부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엄청난 부자 친구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자리를 버리고 자선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빌 게이츠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2009년 5월부터 억만장자들이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도록 유도하는 '기부 서약'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자선과 기부에 앞장서는 부자들은 예전에도 많았다. 이 책의 목적은 그런 착한 부자들을 칭송하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박애자본주의'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그 가능성을 옹호하는 데 주력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박애자본주의는 최근 20~30년 사이 새롭게 등장한 메가트렌드로, 부자들의 자발적 선행에 머물던 전통적인 자선활동과는 개념과 성격이 다르다. 박애자본가들에게 기부는 자선이 아니라 투자에 가깝다. 1997년 유엔에 10억 달러를 기부한 뉴스 채널 CNN의 설립자 테드 터너는 이렇게 말한다. "자선사업이란 인류의 미래에 대한 투자입니다. 나는 절대로 공짜로 주지 않습니다." 그 투자의 목적은 금전적 이익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다. 이들은 가난과 질병, 교육,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위기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이를 위해 기부활동에 비즈니스 방법론을 적용한다. 투자의 조건을 따지듯 자선 행위의 효율과 성과를 측정하고, 필요하다면 모험적 선택도 주저하지 않는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 후 만든 클린턴재단은 매년 전세계 박애자본가와 활동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기부 약속을 받는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열고 있다. 클린턴은 박애자본주의자들을 '동정심 많은 구두쇠'라고 부른다. "그들은 순진하지 않고, 돈 낭비를 싫어하고, 관리의 간접비용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철저하게 이윤을 평가한다"는 클린턴의 말은 박애자본주의의 특징을 잘 요약한다.
이 책은 박애자본주의의 사례와 활동 방식을 널리 소개한다. 버핏과 게이츠, 터너 같은자본가뿐 아니라 난민 구호에 앞장서고 있는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 아프리카 교육 지원에 나선 오프라 윈프리 등 명사들도 두루 나온다. 이들이 효율적인 기부를 하기 위해 어떤 전략과 방식을 취하는지도 전한다. 박애자본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양상들, 예컨대 자선재단의 운영을 평가하고 조언하는 컨설팅기업, 자선기금을 운용하는 전문 펀드매니저 등 중개인의 등장도 소개한다.
갑부들의 선행을 바라보는 눈길이 반드시 곱지만은 않다. 정당하게 부를 쌓았는가, 자선이 혹시 세금을 피하는 술책은 아닌가 등등 의심할 것은 많다. 이 책의 저자들도 이 점을 잘 안다. 하지만, 지금은 "박수를 칠 때"라고 말한다. 의심하기보다 격려하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박애자본주의야말로 '21세기의 복음'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동유럽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빌 게이츠의 기부 활동에 대해 "겅제적 착취를 박애주의라는 가면으로 숨기려는 행동"이라고 비판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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