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리스 골너 지음ㆍ김선영 옮김/살림 발행ㆍ424쪽ㆍ1만6,000원
탐스럽고 새콤달콤하면서 부드럽고 향긋하다. 사각거리는 소리조차 싱그럽다. 과일 얘기다. 시각, 미각, 촉각, 후각에 청각까지 달뜨게 하니 인간사에 얽힌 과일 얘기야 무궁무진하다. 창세기부터 선악과로 등장하는 과일은 허리 아랫도리부터 신성의 영역까지 메타포의 숲이기도 했다.
은 이 풍성한 과일의 역사와 의미를 두루 살피면서 각지의 진귀한 과일 정보까지 담고 있는 과일의 잡학사전이자 박물학지다. 부제는 '유쾌한 과일주의자의 달콤한 지식여행'. 칼럼니스트인 저자 아담 리스 골너는 세계 각국을 다니며 별의별 과일들을 직접 취재해 그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과일 자체가 육감적이니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에로티즘과의 관계다. 중세 서구 여성들은 사과를 겨드랑이에 품어 체취가 배이게 한 뒤 연인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처럼 과일은 성적 노리개나 최음제, 정력제로도 이용됐다. 카사노바는 레몬을 반으로 잘라 속을 비워낸 뒤 피임 도구로 썼다고 한다. 과일을 신체, 특히 은밀한 부위에 빗대는 일도 많다. 복숭아, 체리, 살구 등은 자주 둔부에 비유됐고, 멜론은 이상적 엉덩이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성배였다. 저자가 가장 야한 과일로 꼽는 것은 인도양 세이셸 제도에서 자라는 코코드메르. 여성의 몸매를 쏙 빼닮아 '숙녀과일' '음부과일' 등으로 불린다.
과일은 영혼이 머무는 장소로 여겨지거나 영적 운동의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피지섬 사람들은 과거에 코코넛을 쪼개기 전에 "당신을 먹어도 되겠습니까"라며 허락을 구했다고 한다.
예전에 과일은 귀한 음식이었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수박을 세계 최고의 사치품으로 여겼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사과를 "먹어버리기엔 너무 아름다운 고상한 음식"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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