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주변으로도 여름이 깊어가고 있다. 초록의 산과 들판에 점점이 하얀 꽃들이 피어났다. 아이들에겐 그 생김새 때문에 '계란꽃'으로 친숙한 개망초가 드넓은 밭을 이뤘고, 강가의 높다란 밤나무들도 눅진한 밤꽃을 피워냈다.
여량에서 송천과 만나 조양강이란 이름을 얻은 한강의 물줄기는 가수리에서 동남천과 만나 그 유명한 동강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 가수리부터 시작한 동강의 물줄기는 석회암의 산악지대를 굽이굽이 타고 돌아 절경의 그림들을 빚어낸다.
직선으로 뻗으면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물은 산을 휘감아 돌아 한없이 뉘여 흐른다. 하기야 물이 서둘러 갈 일이 뭐 있으랴. 가기 싫은 듯 돌아가는 딴전 피우는 물길이다. 강은 산을 감싸 안고, 산은 또 그 강을 부둥켜 안는다. 물과 산이 서로를 탐닉하느라 강물은 더욱 더디게 흘러 내린다.
가수리 입구에서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은 '붉은 뼝대'와 '오송정'이다. 검거나 하얗기만 하던 석회암 절벽인 뼝대가 이 곳에선 짙붉은 색으로 우뚝 섰다. 가만히 쳐다보면 붉은 뼝대는 사람 옆 얼굴의 모양을 하고 있다.
붉은 뼝대 바로 옆 또 다른 암벽 위엔 위엄 있게 가지를 늘어뜨린 노송이 서있다. 다섯 그루의 소나무가 정자처럼 그늘을 드리운다 해서 이름 붙여진 오송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두 그루뿐이다.
이 나무엔 재미난 이야기가 얽혀있다. 처음 다섯 그루의 소나무가 있었는데 나라에 환란이 생길 때마다 한 그루씩 죽어 지금은 두 그루만 남았다는 것이다. 앞으로 큰 환란이 두 번만 남았다는 것인지, 두 번의 환란 이후엔 그 어떤 희망도 없다는 것인지.
오송정 아래 마을 입구엔 족히 700년은 넘었을 느티나무가 버티고 섰다. 마을 어르신들이 그 큰 그늘 아래 평상에 모여 더위를 식히고 계신다. 주민들은 매년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제를 지낸다.
가수리는 이 느티나무 뒤의 수미마을과 강 건너 북대마을, 물길 저 아래 기탄과 하매 마을로 이뤄져 있다. 200여 주민들이 동강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터를 일구고 산다.
동강의 물줄기는 고재벌에서 크게 휘돈 뒤 수동, 번평마을 사이로 흘러 내린다. 수동마을과 번평마을 간에는 섶다리가 놓여졌다고 한다. 동강의 많은 섶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섶다리로 손꼽혔던 다리다. 가을걷이를 마친 양편의 마을 주민들은 서로 똑같은 양의 다릿발과 솔가지들을 준비, 양쪽에서 다리를 놓아오기 시작한다.
물 한가운데서 그 다리를 연결시켜 서로를 이었다. 다리가 완성되면 마을의 가장 연장자를 앞세워 주민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섶다리를 놓을 때 설계도는 필요 없었다. 그저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경험으로 만들어낸 다리다. 동강의 산하와 어울리는 가장 완벽한 디자인을 담고 있었던 다리다. 지금 두 마을은 정겨운 섶다리 대신 볼품없는 시멘트 다리가 잇고 있다.
물가로 황소 두 마리가 내려왔다.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해 목을 축이고 몸을 적시러 내려왔나 보다. 소들은 껌벅거렸고 그 커다란 눈망울에 동강의 평화로움이 담겼다.
번평을 지나 점재마을까지가 이번 아리수길 7코스다. 강가를 따라 걸어도 좋고 드라이브하기에도 환상적인 아름다운 코스다. 정(靜)하면서 또 화려한 동강의 묘미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이 코스는 물길로도 가능하다. 바로 동강 래프팅이다. 물 한 가운데서 올려다 보는 뼝대의 웅장함은 멀찍이서 바라봤을 때와는 느낌이 또 다르다. 7월의 뜨거움 속에선 길을 걷는 것보다 시원하게 몸을 축여가며 동강을 만나는 래프팅이 훨씬 여유로울 수 있다. 특이 가수리-점재 구간엔 여울이 없어 한없이 조용한, 동강의 정적을 만끽할 수 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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