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명수 칼럼] 민간인 사찰의 악몽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명수 칼럼] 민간인 사찰의 악몽

입력
2010.07.08 12:34
0 0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을 사찰한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이 사건을 폭로했던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영일ㆍ포항 출신 공직자 모임 '영포회' 가 이 사건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면서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 사건은 과거의 악몽을 되살아나게 한다. 군사정부 시절 정보기관의 사찰은 무시무시했다. 일단 표적이 되면 죄가 있든 없든 무사하지 못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원시적인 공포가 나라를 지배했다. 한 신문기자는 술에 취해 택시에서 박정희 대통령 욕을 했다가 택시기사가 곧장 경찰서로 싣고 가는 바람에 온갖 고초를 당한 끝에 직업을 잃기도 했다.

군사정부 때의 사찰 떠올리게

이번에 터진 민간인 사찰사건은 그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을 잡아다가 고문을 안 했을 뿐 사건의 발생과 처리 과정은 비슷하다. 국민은행 자회사 대표였던 김종익씨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조사를 받았고, 조사가 시작된 지 며칠 만에 결국 대표직을 사임했다.

촛불사태 직후인 2008년 7월 공직사회를 감찰한다는 명분으로 발족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직자도 아닌 민간인을 사찰했고, 영장도 없이 김씨 회사의 장부를 조사했다. 법인카드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이메일까지 조사했다. 법 위에 군림했던 과거 중앙정보부의 행태를 떠올리게 한다.

이 사건은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보수정권이 반대자들을 어떻게 다루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 사건의 제보를 받은 것은 2008년 9월, 집권 초기였다. 그들은 법의 판단을 구하기에 앞서 과거 군사정부가 사용하던 칼을 휘두르며 반대자를 다스리려 했다. 촛불시위라는 홍역에서 얻은 교훈은 흔적도 안 보인다.

그들은 10년이나 정권을 잃었으면서 이 나라엔 자신의 지지자도 있고 반대자도 있으며, 보수파도 있고 진보파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싫든 좋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다. 진보정권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했다. 국민의 생각은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을 번갈아 겪으며 다양해졌는데, 집권세력은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채 경직돼 있었다.

'영포회'의 존재도 어이가 없다. 이런 모임은 과거에 있었더라도 자기 고향에서 대통령이 나왔다면 마땅히 해산해야 한다. 공직사회에 그런 조직이 존재하면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그 동안 수없이 경험했다. 지연 학연 내세워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비선(秘線)을 만들어 국정을 농단하는 것이 이런 단체들이 가는 길이다. 정권실세들이 참석한 '영포회' 모임에서 "이렇게 물 좋을 때 고향을 발전시키지 못하면 죄인이 된다"며 기세를 올렸다는데, 지금 어느 시대에 이런 단체를 허용한단 말인가.

지금 어느 시대인데 그런 단체가

이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에 터져 나온 민간인 사찰 논란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선 반대자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대응을 바꿔야 한다. 정권교체를 여러 번 경험하면서 우리가 얻은 지혜는 탄압으로는 갈등이 더욱 깊어진다는 것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 '반체제'로 몰아붙이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김종익이란 사람의 행동이 밉다고 해서 정부기관이 그를 조사하고 탄압할 수는 없다.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이 정부 안에 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누구보다 대통령이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인 볼테르의 명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나는 당신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말 할 권리를 위해 나는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