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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수사 유용하고 안전…괜한 오해 마세요" 대구 초등생 성폭행 등 사건해결 결정적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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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수사 유용하고 안전…괜한 오해 마세요" 대구 초등생 성폭행 등 사건해결 결정적 기여

입력
2010.07.0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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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주부 문모(31ㆍ전남 광양시)씨는 자다가 누군가에게 목이 졸려 뇌사에 빠졌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지난해 말 기적적으로 의식이 살아난 문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면수사를 받았다. "긴 생머리에 체격이 좋은 여자가 덮쳤다. 자주 본다.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이다." 의식의 이면에서 끌어올린 진술은 의외로 구체적이었다. 범인은 남편이 "신세를 진 누님"이라며 사건 즈음부터 함께 살게 된 A씨였다. A씨는 검찰조사에서 자신이 실은 문씨 남편의 내연녀이며, 문씨의 목을 졸랐다고 자백했다.

1일 발생한 대구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의 피해아동(13)은 3일 최면수사를 받았다.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정확히 진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의 노주형(38) 경사는 먼저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기 전에 발라두는 일종의 마취제라고 했다. 최면에 빠져 서서히 사건 당일로 돌아간 소녀는 손이 움찔하고,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짧은 스포츠머리, 눈썹은 약간 짙고 입은 약간 튀어나왔어요. 무늬 없는 흰색티셔츠, 회색 반바지. 아는 사람, 오빠 친구 같아요." 노 경사는 그 사이 범인의 몽타주를 만들었다. 그날 오후 범인은 잡혔고, 소녀의 최면 진술과 일치했다.

때론 의식이 고장 날 때가 있다. 감당 못할 끔찍한 사건을 당하면 기억은 무의식 속에 가라앉는다. 최면수사는 범죄 피해자나 목격자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속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최근 대구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해결의 결정적 실마리도 최면수사가 제공했다. 영화 소재나 심령술에 등장할 법한 최면기법이 과학수사의 주요 분야로 각광받는 셈이다.

최면수사는 '범죄의 재구성→피해자 혹은 목격자 최면조사→몽타주→범인검거' 순으로 진행된다. 국내에는 1999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전담부서가 설치되면서 도입됐다. 이후 정남규 강호순 등 희대의 연쇄살인범 검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의 권일용 경위는 "갑작스런 충격으로 기억을 잘 못하는 피해자나 중요장면을 보고도 인식을 못하는 목격자들에게 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강호순의 현금 인출과정 등을 목격한 15명에 대한 최면수사로 '30대 후반, 호감형 얼굴, 개인 승용차 사용, 안산지역 거주자' 등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고 했다.

2008년 7월 전북 전주시의 주택방화사건 때는 장롱에 갇혔다 탈출한 10세 소년이 최면상태에서 범인을 지목했다. 강덕지 국과수 범죄심리과장은 "최면수사의 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전체 범죄분석과정에서 수사방향 등을 좁혀나가는 데는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최면수사가 유용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불신과 인권침해 논란도 존재한다. 최면을 한 뒤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조종해 수사와 관련 없는 불필요한 기억들까지 끄집어내거나,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조사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노주형 경사는 "TV등에서 흥미 위주로 보여주는 과장된 최면술과 달리, 최면수사는 약한 최면을 통해 사전에 준비된 내용만 질문을 하기 때문에 악용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인권침해 논란에 대해서도 경찰은 "자격증이 있는 전문 수사관이 사전에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보다 과학적인 분석법과 최면수사의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북경찰청 과학수사계의 박주호 경장은 "최면 몰입과 집중도 여부 등을 감지할 수 있는 뇌파감지기와 기능성자기공명촬영(FMRI) 장치 도입을 앞당겨야 하고, 최면수사 공간의 방음여부, 질문 지침 등 최면수사 매뉴얼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최면수사관은 전국에 50여명 안팎이다. 심리학 등의 필수교육을 받고 난 후 국과수 시험을 통과해 대한법최면수사학회 자격증을 따야 한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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