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수장이 모두 공석이 되면서 재계 리더십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타임오프제의 정착,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경제계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정작 재계의 입장을 대변할 창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6일 조석래 회장이 건강상 이유로 사의를 밝힘에 따라 차기 회장 물색에 나섰다. 전경련은 곧 회장단 회의를 소집, 차기 회장을 추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미 차기 회장으로 거론되는 인사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 회장은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며 "전적으로 회장단이 결정할 일인 만큼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밝혔다. 특히 차기 회장은 조 회장의 잔여 임기인 내년 2월까지 회장직을 수행하고, 그 이후 연임 여부는 다시 결정돼야 한다. 적임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전경련이 제 목소리를 내려면 4대 그룹의 총수 중 한 명이 전경련 회장을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당사자들 모두 이름조차 거명되는 것도 꺼릴 정도이다. 실제로 전경련 회장 자리는 강신호 전 회장과 조석래 회장 선임 당시에도 대부분의 회장들이 고사하는 탓에 추대 과정에서 어려움이 컸다.
경총도 2월 이수영 회장이 사퇴의 뜻을 밝힌 이후 5개월째인 지금까지 공석으로 남아 있다. 5월 이희범 STX 에너지ㆍ중공업 총괄 회장이 추대됐었으나 이 회장이 고사하며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재계 관계자는 "경총 회장이야 말로 노동계에 맞서 경영계를 대표하는 자리인데, 어떤 회장이 노조와 척을 지려 하겠느냐"며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총은 타임오프제를 골자로 한 새 노사관계법 시행과 최저임금 인상 문제 등 산적한 현안을 '선장' 없이 헤쳐가고 있는 형편이다.
문제는 단순히 재계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재계의 수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노ㆍ사ㆍ정 합의와 실천도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즈니스 정상 외교에도 추진력이 떨어질 수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대한상공회의소의 손경식 회장, 한국무역협회의 사공일 회장, 중소기업중앙회의 김기문 회장의 역할과 비중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이와함께 선장 없는 전경련호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경총은 이미 5개월째 회장이 공석인 상태가 되면서 두 단체의 상근 부회장의 리더십도 주목받고 있다. 전경련은 정병철 상근부회장이 28~31일 제주 하계 포럼 등을 주도하며, 당분간 조 회장의 공백을 메우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김영배 경총 상근부회장도 타임오프제를 정착시키는 데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편 재계 일각에선 이번 기회에 전경련과 경총을 합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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