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에 이어 지구촌의 최대 스포츠축제라고 할 수 있는 남아공 월드컵마저 SBS의 독점중계로 끝나고 말았다. 공영방송이 배제된 채, 지상파 상업방송이 올림픽과 월드컵을 독점 중계한 것은 국내방송사상 초유의 사건이며, 외국에서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일본은 NHK, 영국은 BBC, 독일은 ARD 중심의 방송컨소시엄이 이번 월드컵을 방송하였다. 공영방송 중심의 컨소시엄이 방송하는 것은 전국민이 무료로 지구촌의 스포츠축제를 즐겨야 한다는 '보편적 시청권'의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SBS가 잘못한 것은 없다. 상업방송이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여 방송사의 브랜드가치와 수익을 올리는 전략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만약 16강 진출에 좌절하였다면, 본전은 고사하고 막대한 손해를 입었을 것이다. KBS와 MBC가 수신료 인상과 노조 파업으로 어려움을 겪고, 신규매체인 IPTV와 종합편성채널 등이 경쟁력을 갖추기 전에 스포츠 전문방송으로서의 독점적 위치를 선점하고자 한 것이다.
문제는 남아공월드컵 이후이다. SBS는 앞으로 진행될 세 번의 올림픽과 또 한 번의 월드컵을 독점 중계할 것으로 보인다.'이문이 남는 장사'앞에 여론의 비판 따위는 무시할 것이다. 또한 지상파 3사간에 스포츠 중계권 경쟁이 가열되어 중계권료의 상승이 우려된다.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월드컵 이후에 SBS에 대한 과징금 징계를 하고, 코리아풀을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 동안 방송통신위원회는 효과적인 법적 제재수단이 없고 중계권문제가 방송사업자간 갈등이라서 개입하기 어렵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였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90%의 가시청 가구 산정에 케이블TV망을 포함하여 보편적 시청권의 법적 취지를 무시하였고, 결과적으로 SBS의 편을 들어주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해석대로라면 케이블TV나 위성방송도 지역민방 한 곳 정도만 추가하면 90%를 충족하여 올림픽과 월드컵중계권을 가질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중립적인 법 집행을 하지 못하여 스스로 법적ㆍ도덕적 권위를잃은 것이다. 이로 인해 SBS는 과징금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감수하면서 독점중계를 강행하였다. 국회에서도 일부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공동중계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보편적 시청권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공동중계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담합을 명문화하는 것으로, 국제규범에 어긋나기 때문에 FIFA와 IOC로부터 제소를 당할 개연성이 많다. 구속력 있는 코리아 풀은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법외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결국 지상파 상업방송의 월드컵 독점으로 전국민의 16%, 약 700만명 가량이 케이블TV 요금을 내거나 지구촌 축제를 즐기지 못하였다. 특히 도서ㆍ산간벽지의 정보 소외계층들은 상당수가 이번 남아공 월드컵으로부터 소외되어야 했다.
단기적인 이익에 눈이 어두워 지상파 방송의 공적 책무를 망각한 상업방송, 수신료 인상에는 목을 매달면서도 월드컵조차 방송하지 못한 무기력한 공영방송, 규제 대상도 아니었던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조정능력을 과시하였지만 정작 규제 대상인 올림픽과 월드컵에서는 수수방관한 방송통신위원회. 월드컵 이후를 걱정하는 필자의 마음이 기우에 그쳤으면 한다.
정용준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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