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28세에 프랑스 파리 인근의 부자동네 '뇌이 쉬르 센'의 시장으로 당선된 한 젊은 정치인은 그 지역에 있던 세계 1위 화장품 업체 로레알의 대주주 릴리안 베탕쿠르(87)의 자택을 자주 찾았다.
방문 때마다 돈 봉투를 받아간 그는 2002년까지 19년이나 시장을 연임하고, 2007년 프랑스 대통령이 된 니콜라 사르코지(55)이다. 봉투에는 많게는 10만~20만유로(1억5,000만~3억원)가 들어있었다. 2007년 대선 직전에는 사르코지 캠프에 별도로 현금 15만유로(2억3,000만원)가 건네졌다. 후원한도를 20배 초과한 불법 자금이다.
6일 프랑스 일간 '르 몽드'출신 전직 기자들이 운영하는 탐사보도 웹사이트 '메디아파르'에 위와 같은 내용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되자 프랑스 정국이 폭풍에 휩싸였다. 2008년까지 12년간(일부는 24년간이라고 보도) 베탕쿠르의 회계사로 일했던 '클레르 T(가명)'라는 인물의 증언이어서 신빙성이 높다.
클레르는 "베탕쿠르는 사르코지 등 중도우파 정치인들에게 줄곧 불법 정치자금을 줬고, 선거 때 더 심해졌다"고 전했다. "자택 만찬 후 식당 옆 살롱에서 돈을 받아갔고 그 곳 사람들은 사르코지가 돈 받기 위해 온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클레르는 사르코지 대선 캠프에 전달한 15만 유로 중 5만 유로는 자신이 직접 인출했다고 밝혔다. 돈은 베탕쿠르의 재정자문인 파트리스 드 매스트르를 통해 현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의 재무 책임자였던 에리크 뵈르트 노동부 장관에게 전해졌다.
보도가 나오자 프랑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로레알 상속 소송'과정에서 공개된 녹취록에 베탕쿠르가 사르코지 등에게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대화가 포함돼 있었으나, 직접적 진술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엘리제 궁은 "대통령을 흠집내기 위한, 근거 없는 중상모략을 멈추라"며 강하게 부정했지만, 집권당 내에서조차 사르코지의 직접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권은 "사르코지 정권이 돈을 받고 베탕쿠르의 탈세를 은폐했다"고 공격했다. 뵈르트 장관은 회계사 출신 부인을 베탕쿠르의 재산관리 회사에 취업시켜 탈세은폐 의혹을 키웠다.
한편 앞서 4일 1만6,500유로로 개인 제트기를 임차하는 등 예산을 '유용'한 알랭 주아양데 해외담당 장관과 크리스티앙 블랑 파리 교통개혁 담당 장관이 사표를 제출했는데,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관심을 돌리기 위해 사르코지 대통령이 사표를 강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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