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잡 쓴 친구가 단짝"… 우애 피어난 교실 '경계선'은 없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보광초등학교 6학년 5반 조성민(13)군의 단짝 친구는 같은 반 아프가니스탄 출신 베이잔(13)군. 축구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둘은 학교에서는 물론, 쉬는 날에도 늘 붙어 다닌다. "베이잔이 외국인이라 쳐다보는 사람도 있지만 저랑 똑같아요. 축구선수나 연예인 얘기는 저보다 휠씬 많이 아는 걸요."
#전남 무안군 운남면 운남초등학교 교실. 교사 질문에 당당히 일어나 답하는 김소정(13)양은 아빠는 한국인이고 엄마는 일본인이다. 얼굴이 예쁘고 상냥해 친구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김양은 "조선시대 사회 등 한국 역사는 친구들한테 배우고, 나는 일본에 관해 친구들에게 설명해 줘요"라고 자랑한다.
한국 곳곳이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변모해 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미래 변화상을 가장 정확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은 학교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집중 결혼한 다문화 부부들의 자녀가 이제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에까지 다니면서 교육 환경 자체가 바뀌고 있다.
보광초교는 서울 지역 다문화 거점학교다. 거점학교로 지정된 것은 이태원동이라는 지역 특성상 외국인이 많기도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지원 사업을 적극 시행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현재 전교생 870명 중 6.8%(58명)가 다문화 학생들이다. 러시아 이라크 아프간 몽골 등 출신 지역도 다양하다. 한 반에 2~3명이 다문화 학생들이다 보니 이 학교에선 피부색이 다른 친구를 만나는 건 흔한 일.
3학년 4반 일라프(12ㆍ이라크)양과 조채연(10)양은 바늘과 실 같은 사이. 일라프양은 "채연이와 집에 와서 소꿉놀이하는 게 가장 재미있어요"라고, 조양은 "내 가장 친한 친구는 일라프에요"라면서 우정을 과시했다. 이 학교에서 다문화 학생 지도를 담당하는 나여훈 교사는"다문화 학생들이 일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라며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좋다"고 설명했다.
물론 초기엔 어려움도 있었다. 베이잔군은 한국에 온 지 1년 만에 초교에 입학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놀림을 받았고, 2007년 이민 와 2008년 학교에 들어온 일라프양은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와 상반신을 가리기 위한 쓰는 의류)을 쓴 모습을 한국 친구들이 낯설어 해 마음 고생이 심했다.
이 학교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문화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고, 다문화 친구들의 출신 국가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수업도 하고 있다. 인도나 몽골 등 한 나라를 정해 그곳 출신 학생들이나 학부모, 외부 강사가 아이들에게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등에 대해 설명해 주는 시간을 갖는 것. 반응이 좋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이해다. 박은정 교감은 "다문화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라고 말했다.
다문화 학생들로 달라진 학교는 지방에 더 많다. 무안군 운남초교가 대표적인 사례. 3학년 이연희(10)양과 이문정(10)양은 어머니가 필리핀에서 왔고, 김은지(10)양은 어머니 나라가 일본이다. 달리기를 잘하는 이문정양은 체육시간엔 스타고 영어 수업 때는 친구들의 질문 세례를 받는다. 란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책 읽기가 취미가 됐다. 가수가 꿈인 이연희양도 노래와 율동으로 무장한 개인기 덕분에 친구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 학교 3학년생 20여명 중 다문화 학생은 6명이나 된다. 전교생 143명 중에는 17%(21명)에 이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은 피부색이나 생김새에 집착하기보다는 또래 간의 유대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문화를 이해하게 된다. 김아람(영어) 교사는 "다문화 학생들이 학교 생활에 더 적극적이고 성적도 나쁜 편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정이 모두 이런 것만은 아니다. 어머니나 아버지의 피부색 등이 다른 탓에 다문화 학생이 이른바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 학부모들은 다문화 학생과 놀지 말라고 하고, 몇몇 학교에서는 다문화 학생이 집단 구타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장만채 전남도교육감은 "어린이의 사고방식 변화는 어른의 인식 전환에서 출발하는 만큼 다문화 학생에 대해 일반인들의 이해 확대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안=박경우기자 gwpark@hk.co.kr
박철현기자 karam@hk.co.kr
■ 인터뷰/ 성상환 중앙다문화교육센터 소장
"엄마와 아빠에게서 온 문화ㆍ인종적 유산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상환(서울대 독어교육과 교수) 중앙다문화교육센터 소장은 한국이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변해 가고 있지만 미래 사회를 위해 가장 중요한 다문화 가정 어린이의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섬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문화 어린이는 부모와 달리 자신이 선택한 다문화인이 아닌 만큼 한국 사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잘 확립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성 소장은 "어렸을 적부터 건전한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게 되면 다문화 어린이들이 한국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할 수 있다"며 "한국의 순혈주의에 기초한 사회화 과정을 최소화함으로써 이들이 부정적 자아를 형성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미 방과 후 한국어 및 다문화 교육, 학습상담지도 등 정부 차원의 다문화 교육 인프라가 적지 않지만 교육 환경이 보다 광범위하게 다문화에 노출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어울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문화 어린이와 일반 아동이 자연스럽게 같이 생활하고, 서로의 차이점을 조금씩 인식하면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는 게 성 소장이 그간 분석을 통해 얻는 결론이다. 그는 "다문화 어린이를 지원ㆍ육성한다는 차원에서 이들만을 한 그룹으로 묶어 정책을 펴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학교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다문화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이를 일반 국민에 대한 시민 교육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의 가르침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부모와 자신이 피부색과 생김새가 서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취학 전부터 인지하고 있는 만큼 이런 다양성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부모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 성 소장은 "부모가 아이 성장 과정에서 부모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지 말고, 양쪽을 모두 존중하면서 다문화 환경에 적극 노출되도록 도와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장선에서 이중 언어 사용도 중요하다. 다문화 어린이가 아버지와 어머니 말에 모두 노출됨으로써 부모 문화를 이해하고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성 소장의 판단이다. 그는 "예컨대 학교의 다문화 행사 때 다문화 어머니에게 일정 역할을 부여하는 한편, 교육 일선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다문화 전문 상담교사들을 확충하는 게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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