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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FIFA의 스포츠 정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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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FIFA의 스포츠 정치주의

입력
2010.07.0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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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에 의하면 아르헨티나에는 마라도나 교라는 종교 단체가 있다. 마라도나의 얼굴상과 축구공으로 만든 제단도 있고, 마라도나의 골 장면이 끊임없이 방영되는 TV 모니터에 둘러싸여 그에 대한 찬송과 춤을 나누는 예배 의식도 있다. 이 교단에 가입하려는 사람은 1986 년 월드컵 영국과의 경기에서 마라도나가 보여준 '신의 손'골을 재연하는 의식을 거쳐야 한다.

그들에게 마라도나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참혹한 패배를 안긴 적국 영국의 심장에 골을 퍼부은 영웅이다. 6 명의 영국 선수를 추풍낙엽처럼 제치고 단신 돌파하여 급기야'세기의 골'을 성공시키는 마라도나의 모습에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보는 것은 메시아의 출현, 바로 그것이다.

유엔보다 강력한 정치집단

스포츠가 정치에서 자유롭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특히 전쟁이 없는 시대에 전쟁 욕망을 대리 충족시킨다는 축구에서는 더욱 그렇다. 월드컵은 국제축구연맹(FIFA)이라는 가장 정치적인 단체가 주관하는 국가주의 제전이다. 월드컵이 아니라면 우리가 어디서 녹색과 흰색으로 3등분된 나이지리아 국기를 볼 일이 있겠는가? 더구나 이번 월드컵에서는 국내 주관 방송사가 각국의 국가에 친절하게 한글 자막을 붙여주었다. 대개 독립전쟁 등을 기리는 전투적인 가사들인 이들 국가에 맞추어 가까이 보여주는 선수들의 굳은 얼굴은 조국의 운명을 걸고 전쟁에 나서는 병사들의 얼굴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예선 리그를 넘어서지 못한 프랑스 대표팀의 감독은 의회 청문회에 불려 나간 것이고, 굿럭 조나단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자국 대표팀에게 앞으로 2 년 간 국제대회에 나가지 말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정치적인 것은 이 명령을 철회하지 않으면 앞으로 모든 국제대회에서 나이지리아 팀을 영원히 출전 금지시키겠다고 위협한 끝에 끝내 나이지리아를 굴복시킨 FIFA다. 피파는 이제 유엔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보다 더 강력한 정치 집단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보다 제프 블래터 피파 회장의 이름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는 훨씬 익숙하다.

피파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제적인 정치ㆍ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대륙별 참가국 수를 조정하고 있다.

피파가 비디오 판정 도입에 반대한 것은 이 스포츠 정치주의의 절정이다. '축구 경기에서 휴머니즘을 지킨다'든가 '경기를 지연시킨다'는 명분은 허울이다. 진정한 휴머니즘은 인간이 만든 기술로 좀 더 공정한 경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전자시계로 경기를 진행하는 농구나 디지털 기술로 선상에 떨어진 공의 아웃 여부를 완벽하게 가리는 테니스 경기가 반휴머니즘적인 것은 아니다. 더구나 경기장 대형 모니터로 불과 몇 초면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서 경기 지연 명분도 설득력이 없다. 인간의 눈으로는 절대로 오프사이드를 완전하게 판정할 수 없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피파는 휴머니즘의 이름 아래서 지속적인 불공정과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권위 위한 비디오판정 반대

피파가 지키고 싶은 것은 피파의 권위일 뿐이다. 심판의 선정 권한과 그에 따른 판정에 대한 영향력, 심지어 오심에 대한 논란으로도 피파의 권위는 강화된다.

피파가 싫어하는 것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공정하게 됐을 때 단순한 행사 대행자로 자신들의 위치가 격하되는 것이다. 오심 가능성은 피파 지도부가 이 세계 최대의 경제적, 정치적 집단에서 자신들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그래서 핸들링 골에 대한 죄책감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마라도나라는 이 라틴 아메리카 스포츠 민족주의자는 말했다. "전혀! 마치 어느 도시의 뒷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영국 놈의 뒤통수를 갈기고 도망친 것 같은 후련한 기분"이라고.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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